선재, 선재로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화엄사 들매화는 끝내 흐드러지고 (작가: 문녹주,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20년 1월, 조회 330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겠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부지방에 살다 보니 큰맘 먹고 장만한 패딩 점퍼가 옷걸이에서 먼지만 모으고 있지요. 적어도 휴전선 이남의 한국이 점차 아열대 기후로 변해갈 것이라는 예측이 허풍처럼 들리지는 않습니다. 장차 로또에 당첨되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제주 여행가서 본 것처럼 뜰에 유자나무 하나 정도 심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이런 팔자 좋은 고민은 그렇다 치고, 인간처럼 더우면 벗지 뭐 하며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수 없는 동식물들이 훨씬 많습니다. 개중에는 역시 인간이 보기에 그럴 가치가 있어서 어떻게든 살려 놔야 할 개체들도 있겠지요. 매우 인간적인 현상이며 조만간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한편 구례에는 화엄사가 있고, 화엄사에는 들매화가 있군요. 그리고 리뷰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실존하는 사찰이 비중있게 등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실상 주인공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경내에 대한 묘사가 집요하기 보다는 담담하지만, 오히려 과하지 않아서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집니다. 역시 지어낸 것과 진짜로 있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의 배경상 스님들도 여러분 등장하시는데, 사찰의 규모가 대단하다 보니 단순히 큰스님이나 주지가 아닌 기획국장 같은 실무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미디어에서 자주 조명되지는 않지만 실은 불교도 대형 종단은 제법 관료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지요.

관료 이야기를 하자면 마침 주인공 커플이 정부 관료입니다. 완전 공무원이라기 보다는 정치권의 TF에 가까운, 덕분에 약간 불안한 지위긴 하지만 그런 만큼 들매화와 관련한 정부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화엄사와 엮인 개인사로 인해 스님들과도 남이 아니다 보니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한마디로 주인공은 정부와 화엄사 중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애매한, 경계인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거기다 그 개인사라는 것도 가족문제라서 자식된 도리로 또 고통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이라는 게 다 그렇죠 뭐.

그래서 이 작품이 이런 갈등들에 대한 불가적인 풀이를 제시하느냐면, 미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디즘이 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을 리야 없지만, 믿으면 집과 차와 돈을 가지게 해 주는 가르침이 아니라 집과 차와 돈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정도로 간주하고 있습죠. 아무튼 작중의 대표적인 갈등은 당연히 들매화의 보전에 관한 것입니다. 실상 어느 쪽이 옳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흔히 보는 자연을 때려부수자와 보전하자의 대립이 아니라, 보전을 하긴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옳은가를 두고 맞서는 형국이라 딱히 독자로서 쉽게 어느 편을 들고 이입할 만한 상황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실시한 조사를 통해서도 옮겨 심는 쪽이 낫다는 데이터가 나오기도 하고요. 다만 정부 쪽에 메인빌런 포지션인 은영이 있다 보니 화엄사 쪽의 입장에 좀 더 힘이 실리는 감은 있습니다. 참고로 은영의 캐릭터에 대해 설마 저런 사람이 저런 자리에 앉아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분들이 있다면, 진짜로 있습니다. 믿으세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화엄사측이 협상의 조건으로 난제를 제시했을 때, 왠지 한국 불교가 나올 때마다 등장해서 상투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꾸만 보고싶어지는 소재인 간화선이 등장하는 것인 가 싶어서 설렜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영화 달마야 놀자(어째 연식이 드러나는군요…)에서 깨진 독에 물을 채우는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을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수 있을지도요. 그러나 난제는 그냥 생활 민원이었고, 그나마도 마지막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과제라는 측면에서 약간은 허탈감이 느껴졌습니다. 뭐 위원장을 엿먹이는 것 자체는 좋지만, 공식적으로 협상 조건을 제시해놓고 이런 식으로 임하는 것은 여론에도 별로 좋지 않겠지요.

오히려 불가적인 내려놓음은 그 이후에 나타납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 덕은을 살려야 한다는 핑계로 화엄사의 농성을 돕고, 마침내 마주한 아버지를 보며 오랜 애증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시작부분에 잘 숨겨놓았던 보살님의 매듭이라는 소재에서 천년 고찰과 공양에 얽힌 이야기가 또 풀려나옵니다. 그 또한 흥미진진하면서 참으로 시원스러운 마무리였습니다.

불교적인 요소와 더불어 작품을 떠받들고 있는 SF적인 측면을 보자면, 본 작품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 크게 두 가지 등장합니다. 공기청정탑과 음식입출력기인데, 전자는 2020년 현재 생활이 된 대기오염이 근미래에는 한층 더 막장화된 상황을 보여주고, 중반부에 해량스님이 제출한 난제 해결에 콤팩트 버전으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드론을 떠안겨서 후반부 드론 공양을 가능케 하는 장치도 되지요. 여기서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사비로 사라고 강요하는 막장스런 정부기관이 어딨냐고 묻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역시 진짜로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문제는 음식입출력기인데, 이 장치는 작중에서 여여심 보살님의 실직을 유발하고 후반부 공수 작전에서 보급품을 간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육식을 피할 수 있게된 덕에 생태주의와 부디즘이 중흥하였다는 서술이 있긴 하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대형사찰을 봉쇄하고 전력공급을 끊어버리는 공무원이 나오는 상황이니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등장하기에는 음식입출력기가 너무 강력한 기술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작중의 서술에 따르면 이는 분자단위 스캔 및 재조립 기술인데, 사실 이 기술 하나만 두고 작품을 써도 될 정도로 오버테크놀러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게 등장할 경우 식문화를 뒤흔드는게 아니라 신세계질서가 수립될 것 같은데요, 미묘하게도 작중에서 해당 기술이 대체해버린 분야인 요리가 오히려 대체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심란해졌습니다. 그것도 다름아닌 작중에서 술과 차와 커피가 살아남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작가분과 저는 식문화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자체에 비해 이야기에 동원된 요소가 좀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그야 비평을 위해 하는 비평이니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 중요치 않은 문제로 글을 몇 문단째 쓰고 있는건지 모르겠으니 그게 웃긴 노릇이지요. 자기계발서 저자 치고 맞는 말을 많이 하는 피터 드러커 선생에 따르면 단점이 없는 사람들만 모은 집단이야 말로 정말로 아무 쓸데가 없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는 단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장점이 있습니다. 불교나 SF 나부랭이보다 중요한 이야기의 힘이 있거든요.

주인공은 절간과 정치판을 잇는 매개자이며, 출가한 아버지를 둔 상처입은 아이이며, 어떻게든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청춘입니다. 사회생활의 비루함 때문에 자신을 잃을 뻔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옳은 선택을 하고 새 희망을 찾지요. 그래서 화엄사 들매화는 옮겨 심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아무튼 꽃은 흐드러지고 저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주인공인데요. 주인공뿐 아니라, 지방의 분위기와 사찰 풍경에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아 그랬지 하는 요소나 인물들이 톡톡 튀어나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앞서 말씀드린 이런저런 시시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저 아직 화엄사에 가 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이 몸서리치게 아쉬운 소설이네요.

구정도 지나고 어느덧 내일이면 2월이군요. 더 이상 새해는 오지 않았다는 핑계도 댈 수 없겠습니다. 제발 작년보다는 나은 올해가 되길. 간만에 좋은 작품에 감사드리며, 작가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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