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픽션? 펄프픽션!!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잿빛모호 – 밀수꾼의 노래 (작가: 조나단, 작품정보)
리뷰어: 드비, 19년 12월, 조회 103

영화얘기가 아닙니다. 펄프픽션(1994)은 킬빌 시리즈로 나름 유명세가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죠. 하지만 그전에 ‘싸구려 통속소설’ 이라는 명사화된 뜻이 있습니다. 영화 펄프픽션은 이름과 달리 당시 독특한 시차 서사 기법 등 영화문법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걸작입니다.(아카데미 각본상 득)  물론 존 트라볼타와 우마서먼의 댄스 장면만을 기억하시는 분도 꽤 되시겠지만 말이죠.

 

이 소설, <밀수꾼의 노래>는 펄프픽션, 스페이스 오페라를 표방합니다. 뭐, 작가님이 태그에 그렇게 달아 놓으셨네요. 겸손? 결론적으로 사전적 의미의 펄프픽션이라 말씀하시는 거라면, 과한 겸양이시다는 생각이지만…

 

초반 황량한 서부가 연상되는 도망자들의 별에서 이 글의 화자는 거친 도망자, 더티할리를 만납니다. 그리고 화자가 찾던, 한 사람의 이름을 듣게 되죠. 허풍선이 패배자의 냄새가 물씬나는 더티할리와 ‘바람의 악마’ (+ 손자의 절친한 악귀^^;;)라는 술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이 글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사실 더티할리는 이야기 속의 또 다른 화자이면서 관찰자이기도 합니다. 드세지만 어리숙한, 험악할 것 같지만 인간적인.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

이야기는 그의 술주정같은 회상으로 시작하고 끝자락엔 다시 그의 시점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 액자구조는 흔한듯 친숙한 기법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광활한 우주, 조난당한 더티할리가 ‘고대의 사략선’ 물수리호의 에이드에 의해 구조되고 오랜 잠에서 깬 선장 모호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의뢰’에 동행하게 되지요.

농담을 이해 못하는 인간에게 재미없다고 핀잔주는 인공지능 [마요르]와 히스테릭한듯 따뜻한, 무서운(?) 신비의 선장 [모호]에 저 근육바보(?) [더티 할리] – 이 세 캐릭터가 나누는 대화나 사건들의 케미가 꽤 좋아서, 이 조합의 다른 이야기도 있으면 좋겠다 기대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후반부 더티할리의 처분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딱 주정뱅이 이야기꾼이 필요하셨을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셨겠지만 어쩌면…하고 다음 다음 이야기에 재등장도 기대해봅니다^^;; )

덧붙여 왠지 굉장한 능력과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을 것만 같은, 다음에 활약하게 될 것 같은 함선 물수리호를 상상하는 것을 포함해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다 느껴버려서… 늦은 시간, 조금만 보다 잘까 했었는데 단숨에 봐버렸어요. 단편으로는 조금 긴 호흡인데도 말이죠.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진 않습니다. 두 가지를 ‘억지로’ 꼽아 봤는데…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둡니다! & 많이 유치한 추임새가 초큼 있으니…미리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1. 신나게 보다가, 문득 텐션이 좀 떨어진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모호가 의뢰인 도나타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처음엔 너무 많이 반복되는 어미 -요’ 때문일까 생각했습니다만… 나름의 결론은 캐릭터성 때문이 었습니다.

모호의 첫등장에서는 ‘역시 아름답지만 까칠한 캐릭터인가!’ 했었어요. 모호 같은 역할에 꽤 들어맞는 성격이거든요. 물론 이런 여성 캐릭터는 흔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왕님같이 극단으로 가도 재미있고요(하앍! 더! 더 때려 주… …크험, 이거 말고요^^;;)

그런데 냉소적이고 가시돋혔던 그녀가 의뢰인 도나타를 만나 대화할 땐 세상없이 다정 다감 세심녀가 됩니다. 그게 어때서 라구요? 음, 네. 그럴 수 있죠. 상대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건 인간관계의 기본 스킬 중 하나죠. 단지 조금 실망했을 뿐이예요(아 나의 여왕님의 도도함은 어디로…걍 반말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ㅠㅠ)

그러다 붉은 바다로 강하하며 환호하고 노래하는 모호를 봤습니다. 아… 이 가사, 이 유쾌함은… 술한잔 걸친 아재의 그것이 아닌가요!!? (악! 더티 할리가 모호 가발을 쓰고 밀수꾼의 노래를 부르는 걸 상상해 버렸어! ㅠㅠ …죄송합니다. 썰렁한 추임은 여기까지예요 ^^;)

 

현실에서, 상황과 상대에 따라 태도나 말투가 바뀌는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연륜이랄 수도 있고요. 그러나 픽션에서는 다양한 성격의 노출이 반복되면 개성이 떨어집니다. 다른 말로 덜 매력적인 ‘모호한’ 인물이 된다는 거예요. 때문에 픽션에선, 아예 과묵하거나 아예 수다스럽거나, 아예 대범하거나 아예 소심한, 등 성격이 일관적이거나 ‘치우친’ 캐릭터가 더 매력있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모호보다, 더티할리나 마요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게… 죄송하고 아쉽습니다.

 

 

2. 순결하고 하얀 꽃이 피어나게 된 배경에는 고양이를 닮은 그들 종족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누적된 울분에 견디다 못한 그날. 그들의 어른을 시작으로 수많은 그들이 자결을 하게 되는데- 하필 그 방법이 ‘배를 가른다’ 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판타지적인 종족입니다. 거리와 공간을 뛰어넘어 마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아픔과 슬픔을 공유한다는 설정은 정말로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수백 수천의 그들이 외부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항거하는 의미였던 자살은, 고통과 감정을 공유하는 그들 스스로를 향한 말도 안되는 폭력인 거였지요

이 부분, 작가님이 진짜 고민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의 당위를 위해 꼭 필요한 장치였을 텐데… 그들의 숭고해야할 죽음에 할복 말고 다른 것은 없었을까요?

배를 가른다는, 할복은 결코 숭고한 행위가 아니예요. 칼로 자결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삼국, 고려시대 정도까지 기록에 있지만 그런 모양새가 극단으로 간건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서 나왔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찌른 채 배를 다시 가른다는 건 정말 끔찍한 정신력이라지만 좋게 말해 자존심, 말그대로 오기일 뿐… 죽음의 미학 따위는 없습니다. 결코 비장하게 미화돼서도 안된다 생각합니다. 음…할복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다른 방식이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망고 개인적 아쉬움)일 뿐이니… 작가님께서 오해 마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글을 맺겠습니다.

이 글은 몇번을 곱씹어야 하는 심오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은 그런 의미에서 펄프픽션이라 스스로 낮추신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번에 검색하다 알게 된 ‘펄프픽션’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짜투리 역사. 1920~50년대까지 유행했고 저급하다 평가받던 소설잡지 ‘펄프 매거진’ 그 속에 실렸던 다양한 장르문학… 저질 종이에 인쇄됐던 그 단편, 단권들을 바로 펄프픽션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립 k 딕, 아이작 아시모프, 마크 트웨인 등의 거장들이 거기서 배출되었다고!

그래요 어쩌면… 누가 알까요? 이 작품이 훗날 어느 유명작가의 옛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지.

 

한번쯤, 문학성, 작품성 그런 잣대 내려놓고 그냥 재미있게 즐겨보시길. 근사한 펄프픽션 스페이스 오페라, <밀수꾼의 노래>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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