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에 대한 강박
여자는 은에 대한 강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인물이다. 특히 순은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 은식기는 물론 스트로우까지도 은으로 된 것을 원한다. 그러나 은은 쉽게 변형될 위험이 있어 스트로우는 스테인리스에 은을 도금한 것을 쓰게 된다. 은에 대한 강박은 곧 정화, 깨끗한 것에 대한 강박이다. 세균이나 더러운 것이 없기를 바라는 그녀는 일상 생활 속에서 극단적인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게다가 무균실에 대한 공상을 일삼는다. 이 정도면 병적인 수준이지만, 그녀는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죄악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여자가 은에 대해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지 작품의 중반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생수, 육식, 노동착취 등 인류는 끊임없이 죄를 반복한다. 여자는 ‘은이 독을 검출한다’는 속설에 대해 말하며 인류가 저지르는 죄악이란 곧 독이나 다름없다며 경멸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녀는 독으로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깨끗해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 은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순은보다 도금에 가까운 존재
여자는 은에 집착하지만, 은 그 자체는 되지 못했다. 그녀는 성당의 미사 의식 중 은 중독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때 이미 그녀는 손끝이 검게 변색될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그녀의 신체 일부가 변색된 것은 마치 도금된 은이 벗겨지며 변색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녀는 사실 순은보다는 도금에 가까운 존재였다. 순은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어 도금된 스테인리스 스트로우처럼. 그녀는 입원 중에 자신을 병문안하는 사람들과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깨닫게 된다. 그녀도 그들과 다름없는 독이라는 사실을.
거울로 비춰보는 우리
결국 여자는 자신은 온전한 은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은식기들을 모두 꺼내 녹여 거울로 만든다. 오래 전에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청동거울처럼, 은으로 된 거울은 이제 여자의 죄를 비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자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은에 가까워지고 싶은 열망을 실현한다. 그것은 은식기로 식사하거나 채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독을 인정하고 매일 조금씩 정화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작품은 한 개인의 속죄에 대한 고뇌로 시작해, 인류의 죄악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죄가 독이 되어 우리 자신을 검게 물들이고 있음을 알려주며, 이를 깨닫고 깨끗해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피력한다. 매일 반성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전진하는 것은, 마치 은식기들을 녹여 은경으로 재탄생시킨 것처럼, 우리 스스로를 연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마치 성경에서 말하는 ‘연단(성화)’과도 같은 이치이다.
한 개인에서 시작해 죄와 정화라는 넓은 테마로까지 이어지는 서사는 가히 놀랍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로 인해 이것이 단편소설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런 스타일은 참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죄와 관련된 테마를 좋아하는데, 작품 속에서 잘 다뤄주어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