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고 규정할 때 자신도 그 안에 포함된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차가 막히는 도로에서 ‘왜 이리 차가 많지’라고 운전자가 생각할 때, 사실 그 사람 역시 교통체증의 당사자이기도 한 것처럼. 사람들은 대상을 나누고 규정하기를 좋아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자신 역시 자기지시적으로 규정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이 작업을 ‘반성’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종종 반성이라는 과정을 굉장히 사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지듯 이는 그리 평화롭고 안온하기만 한 작업이 아니다.
철민은 계약직 노동자다. 그는 물류센터에서 사물들을 나르고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물론 택배들은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어 있고 여기에 그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그는 사물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한다. 이 물건은 아직 쓰일 수 있는데 버려지네, 이건 폐기되기 전에 쓰임새를 다해서 다행이군.
그러나 “어떤 사건”을 통해, 철민은 그 자신 역시 관리되고 운반되는 운명에 속해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하던 방식대로 분류되고 운반된다. 그의 의도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아직 충분히 사용가능한 물건들이 ‘쓸모를 잃었다’는 이유로 처분되듯이, 그가 속한 세계에서 쓸모는 그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따박따박 일하고 월급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했던 그의 순진한 믿음은, 그가 관리자들의 전달사항을 “더 들을 것도 없이” 익숙해져버렸다고 생각했던 안온한 세계는, 그렇게 산산조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