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곡면 위의 개미 실험 비평

대상작품: 폐곡선 (작가: 광원, 작품정보)
리뷰어: 담장, 1시간 전, 조회 9

사담을 조금 보태자면, 이번 기회에 내 취향이 대나무 같음을 한 번 더 실감하게 됐다. 이 말은 리뷰가 꽤 뚱뚱해질 거란 뜻이다…

‘책임감 있는 열린 결말’이라는 개념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단순한 신선함을 주기 위한 열린 결말은 이제 꽤나 고전이 되어서 요즘엔 다시 꽉꽉 닫힌 결말을 원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내가 여전히 결말에 이르러 고심해볼 만한 질문거리를 한아름 안겨주고 떠나는 작품들을 놓지 못하는 이유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 작품은 하드 SF의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작품이다. 전공자로서 감동 받은 부분도 몇몇 있고, 무엇보다 세계의 비밀을 한 번에 나열하듯 설명을 줄줄 풀어둔 것이 아니라, 곳곳에 복선을 배치해서 점진적이고 안정적으로 잘 회수한 글이다.

하드 SF와 소프트 SF를 나누는 것에는 의미가 없고, 문학이 된 이상 과학적 정합성을 하나하나 파고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이과의 미학을 최대로 끌어올린 이 작품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따라서 이번 리뷰에서는 나선형 공간이란 것에 변주를 줘 이야기의 방향성을 여러 갈래로 비틀어보는 실험을 해볼 것이다. 수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올텐데 최대한 풀어서 설명해 보겠다.

사족이 길어졌는데 짧게 줄거리 요약부터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줄거리 요약

탐험가 데릴과 사진사 폴은 이음새 하나 없는 완벽한 곡면의 거대한 원통형 도넛 구조물에 갇힌 채 일주일을 넘게 표류한다. 복도에는 조명이 달려 있고, 조명은 폴과 데릴이 거리를 감지할 수 없도록 거리와 무관하게 동일한 밝기를 내뿜고 있다. (전공자로서 이 부분에서 살짝 감동받았다) 식량과 물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달되며, 폴은 특정 구간마다 사진을 찍어 이 공간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불길한 징조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매번 배달되는 음식으로 말이다. 폴과 데릴은 유청이 분리된 요거트를 마주한다. 요거트의 유청이 분리되어 있다는 걸 보아 배달된 지 적어도 몇 시간은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돌이킬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 역시 뚜껑을 여는 순간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데, 끓었다는 것보단 증발에 가까웠다. 아마 이때가 마지노선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폴은 전구의 불빛이 빨간색에서 노란색, 푸른색, 초록색으로 바뀐 것을 확인한다.

처음에 비해 빛의 파장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도플러 효과 중 청색 편이가 일어난 것이다. 이 말을 풀어서 설명해보겠다. 외부의 물건 (전구, 요거트) 등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중력이 강하다) 반면 폴과 데릴이 떨어진 이 공간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중력이 약하다)

즉,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에 있던 물체 혹은 빛을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곳에 있는 관찰자가 보게 된다면 빛이 점점 파장이 짧아지는 것처럼 보여 파란빛이 보인다는 것이다.

폴은 자신이 찍어온 사진을 비교하여, 복도의 반지름이 미세하게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 공간은 반지름이 점점 커지는 로그 나선의 일종이다.

도넛 내부의 시간은 도넛 외부, 우리가 알던 현실보다 훨씬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나선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나갈수록, 이 공간의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흐른다. 나선의 반지름에 비례해서 말이다.

 

 

처음에 붉은빛이었던 전구가 푸른빛이 되었다는 것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방향, 다시 말해 나선의 바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에 따라 폴과 데릴은, 구조대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일정 간격마다 음식을 놓고, 신호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SOS. 다만 구조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에 나선의 중심을 기준으로 시간을 길게 늘려 신호를 보냈다. 이를 알아차린 지점에서, 폴과 데릴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폴은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데릴은 나선의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늘 동행하던 동료가 결국에는 서로 다른 길을 택한다’라는 비유로 이야기가 마무리될 것 같지만, 나는 여기서  무서운 가능성을 하나 더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만약 이 공간이 로그 나선이 아닌, Z축(높이)를 가진 ‘헬리코이드’ (나선면)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 공간이 나선의 성질을 가진 ‘헬리코이드 뫼비우스의 띠’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능성은 총 세 가지.

높이가 일정한 로그 나선, Z축을 향해 빙글빙글 돌며 올라가는 헬리코이드, 그리고 나선의 성질을 따르는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이때, 관찰자는 공간의 형상을 내부 관찰로만 분간할 수 있는가?

 


미시적인 존재가 우주를 가늠하는 법

앞서 로그 나선에 관한 이야기는 했으므로, 헬리코이드와 뫼비우스 띠에 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우리는 눈 앞에 놓인 농구공을 보고 형상이 ‘둥글다’라는 것을 인식한다. 이는 우리가 농구공을 ‘밖’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주 안에 있는 우리는, 우주를 밖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님에도 우주의 모양을 유추할 수 있는가?

폴과 데릴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공간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상이란 것에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가볍게 이런 게 있다 정도로만 이해해도 충분하다.

위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기하학적 생김새와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위상 수학이란 우주의 모양을 예측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학적 도구로, 고무 찰흙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위상동형: 찢거나 붙이지 않고, 늘이거나 구부리는 것만으로 서로 같게 만들 수 있으면 같은 도형이다!

(위 사진 역시 전부 위상 동형이다)

찰흙을 뭉치면 여러 형상을 만들 수 있다. 이때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을 붙이거나 아니면 연결된 부분을 찢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거면 위상동형으로 본다. 즉, ‘구멍이 몇 개냐’, ‘구멍이 있느냐’, ‘앞뒷면이 구분 가능한가’에 의해 형상이 분류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도넛과 손잡이가 있는 컵은 구멍이 하나기 때문에 위상동형이다.

공과 큐브는 구멍이 없는 한 덩어리기 때문에 위상동형이다.

결국 위상수학은 복잡한 우주의 형상을 단순화 하여 대략적인 형태를 유추하려는 시도 중 하나다. 만약 충분히 긴 허상의 밧줄을 던졌다고 가정할 때, 우주가 도넛 모양이라면 구멍에 줄이 걸릴 것이고, 우주가 구 형상이라면 구멍에 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즉, 일반적으로 물체의 형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물체를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지는데, 우리가 물체의 안, 즉 공간의 안에 있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구 안에 들어가 있는 우리가 외부의 구 껍질은 볼 수 없더라도 내부의 구 껍질은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우리는 너무 작은 존재라 이마저도 어렵다)

공간의 형상을 내부 관찰로만 분간할 수 있는가?

따라서 이에 관한 답은 ‘그렇다’이다.

(좌: 헬리코이드 (3차원 나선) / 우: 헬리코이드형 뫼비우스 띠)

*여기서 헬리코이드는 로그 나선의 성질을 가진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폴과 데릴은 이 공간이 ‘나선의 성질을 가진 공간’이라는 것까진 밝혀 냈다. 그러나 위 사진에 나와 있는 것처럼, 로그 나선인지, 헬리코이드인지 헬리코이드형 뫼비우스 띠인지는 구분하지 못했다. 즉, 기하학적 형상은 파악했으나 위상은 파악하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위상의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폴과 데릴의 목표가 이 공간을 ‘탈출하거나’, 아니면 ‘끝을 보거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말 이후의 가능성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몇 가지 추측을 내놓으겠다.


 ⓐ 일반 헬리코이드일 경우

 

헬리코이드 (나선면) 의 특징

1. 앞면과 뒷면이 구분 가능

2. 중간에 공간이 뒤집히지 않음

이야기의 결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데릴이 나선의 끝을 보게 된다. 데릴과 폴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헬리코이드는 3차원 나선으로, Z축의 존재로 인해 중간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영원히 올라가거나, 영원히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 끝에 탈출구가 있을지 종말이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헬리코이드는 폐곡면이 아니라 열려있는 곡면이기 때문이다. 가장 클래식한 결말이다.

 

ⓑ 헬리코이드형 뫼비우스일 경우

이 경우에는 결말의 의미가 더 확장될 수 있다.

뫼비우스 띠의 특징

1. 앞면과 뒷면이 하나로 연결됨 (안과 밖의 개념이 없음)

2. 한 바퀴 돌면 방향이 뒤집힘

3. 두 바퀴 돌면 원래 방향으로 돌아옴

뫼비우스 띠는 띠를 한 번 뒤집어서 연결한 형상으로, 끝이 없는 무한한 띠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뫼비우스 띠에도 종류가 있는데, 반지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따라 뫼비우스 띠 역시 ‘나선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 나선이란 결국 기하학적 형상의 개념이고 뫼비우스의 띠는 ‘위상’의 개념이기에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

폴과 데릴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바로 공간의 위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전의 논점으로 다시 되돌아 가보자. 폴과 데릴은 이 공간이 일종의 나선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공간 크기에 비해 아주 작은 존재이며, 비유하자면 개미와도 같은 존재다. 인간은 공을 보았을 때 ‘둥글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아주 작은 개미에겐 공이 너무 커서 ‘평평한 벽’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개미는 헬리코이드와 뫼비우스 띠, 그리고 헬리코이드의 성질을 가진 뫼비우스 띠를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뫼비우스 띠는 한 바퀴 돌면 앞면에서 뒷면으로 이동하니까 벽에 손을 짚고 움직이면 면이 뒤집혔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공간에 특정 물건을 붙박여 놓고 랜드마크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때 고려해야 할 것이 ‘자기 참조의 함정’이다. 뫼비우스 띠의 위상 특성 상 한 바퀴를 돌았을 때 공간의 상하좌우가 뒤집히지만, 관찰자인 폴과 데릴 역시 해당 공간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벽에 한 손을 짚고 전진한다고 해서 면의 앞뒤가 변경됨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간 내부에 있는 존재는 해당 공간과 동일한 좌표계를 기준으로 삼게 되니 말이다.

게다가 추가적인 문제는 개미가 공간을 몇 바퀴 돈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기서 폴과 데릴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게 중요하다.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비교 가능한 상대 참조값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데릴이 폴보다 뫼비우스 띠를 한 바퀴 더 돈 지점에 도착한다면 폴과 직접 만나진 못하지만 자신과 동일한 지점의 반대편 공간에 데릴이 존재하게 된다.

여기에 sf적 설정을 조금 더해 데릴이 거울, 혹은 호수 같은 곳에서 반대편, 즉 뒷면에 있는 폴을 확인했다라는 설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이때 시간이 반대로 흐른다던지 경향이 다르다던지의 설정을 넣어도 좋겠다. 결국 시공간은 하나이기에 반댓면의 시간을 파악한다면 그 공간 역시 잠시 들여다 볼 수 있다로 가도 재밌을 것 같다. (상호작용은 불가)

그런 다음 두 바퀴째에선 둘의 재회가 이루어지고,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사실 같은 결말을 향해 움직인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확장될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가 가능해진다.

 

아니면 조금 더 코스믹 호러스러운 쪽으로 가볼 수도 있다. 구조대가 이미 한 번 구출 시도를 했는데, 이는 공간 자체를 잘라 빈 틈으로 폴과 데릴을 구출하려던 거였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드 sf적 설정을 고려했을 때, 이 구출 시도는 ‘공간을 잘못 잘랐다’로 설정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세부적으로는 ‘뫼비우스 띠의 중간 지점을 따라 쭉 자른 것’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

이는 구조대의 패착이었다. 왜냐면 뫼비우스 띠의 중간 지점을 따라 자르면, 고리가 끊기는 것이 아니라 길이가 2배로 늘어난 뫼비우스 띠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조대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폴과 데릴을 더 무한한 공간에 가두는 꼴이 되었다.

애초에 구조대가 SOS 신호 역시 띠의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보냈으니, 탈출 공간 역시 중간 지점에 만들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이는 결국 공간의 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판단에 지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조금 더 서브컬처스럽게 만들어보자면, 백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애초에 뫼비우스 띠의 앞면은 현실, 뒷면은 이 기이한 공간이라는 두 번째 가설을 도입한다. 이때 뒷면이 폴과 데릴이 떨어진 나선형 공간이며 이를 백룸이라고 한다.

백룸으로 들어온 방법이 있다면 나가는 방법도 있을 터. 그 가능성 중 하나로 안정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뫼비우스 띠는 몇 번의 꼬임이 있었는지에 의해 ‘안정성’이 결정된다. 이때 안정성이란 뫼비우스 띠를 만들고 그대로 두었을 때 띠가 풀어지거나 끊어지지 않고 형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은 반대로 말해, 안정성을 깨트리면 루프를 풀고 나갈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에 관한 것은 굽힘힘 등에 관해 생각해보면 좋을 듯 하다.


마치며

이런 식으로, 이야기의 결말을 다양한 방식으로 비틀어 보았다. 이야기의 끝에서 확장 가능성과 자유도가 높은 작품이야말로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아는만큼 아름다워 보인다는 말은 단언컨데 하드 sf를 위란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연거푸 하게 만들어준 이 작품에 감사함을 느낀다. 열린 결말이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선물해주는지 다시금 실감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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