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는 기계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임모탈리스 엑스 마키나 (작가: 렝고, 작품정보)
리뷰어: WATERS, 19년 12월, 조회 207

스포일러가 매우 많습니다. 저는 스포일러 없이는 리뷰를 쓰지 못하나봐요…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첫손에 꼽고 싶은 단어는 바로 ‘고기’입니다. 사실 다른 대체어가 많아요. 육신이라던가(고기라는 뜻의 한자어가 들어가죠) 아니면 살아있는 몸이라던가(기계 몸은 살아있다고 하긴 좀 그러니까요. 기계 두뇌에 깃든 인공 자아라면 모를까) 여튼 사람이 구워먹고 삶아먹고 끓여먹는 식재료인 ‘고기’라는 단어를 차용해 온 점에 대해서 전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은 오로지 머리만이 ‘고기’에요. 일단 저는 계속 고기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써서 그 의미를 강조하고 싶지만, 귀찮고 별로 가독성도 좋지 못하니까 따옴표는 생략할게요. 여튼 주인공은 고기로 이루어진 머리를 가지고 있고, 모르긴 몰라도 법정의 엘리트들은 대부분 – 제가 작가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100퍼센트 – 백 퍼센트 기계의 몸을 가진 불멸 시술자들이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작품의 핵심은 고기와 기계의 대비입니다. 물론 불멸 시술의 기득권층 독점으로 인한 사회의 부조리함과 그로 인해 재생산되는 사회의 부도덕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주제겠지만, 그 모든 것들도 고기와 기계의 대비로 녹여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는 구조적 메커니즘으로 돌아갑니다. 개인의 능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대통령이 죽어도 권한대행이 나오고 권한대행이 죽어도 또다른 권한대행이 나오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저번에 어떤 다른 단편에서 읽어봤는데, 다 죽고 업무를 포기하면 마지막 남은 9급 공무원도 의지를 갖고 있다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수 있다더군요. 물론 이게 진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사회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는거에요. 다만 대부분의 기계들은 언제나 병렬식 설계를 가지고 뭐 하나가 고장나도 나머지가 대신하게 되어있죠. 그리고 그건 다분히 사회적으로 인간답지 못해요.

누구 하나가 죽고 사라지고 배제되어도 멀쩡히 굴러가는 세상이라뇨. 우리는 모두 그런 세상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래요. 분명 제도는 행정편의적으로 이루어지고, 나름 제정 당시에는 보편타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소수와 약자를 대변하고 지키지 못할 때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런 법과 사회를 구축해 놓은 기득권층은, 그 규정을 스스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규정 외에서 활동하며 행동하는 이들에게 불법과 부도덕, 사적제재라는 타이틀을 뒤집어 씌워요.

그건 기계죠. 그들은 맥락을 따지지 않고 정해진 절차와 – 그 절차가 현재사회의 인권의식을 반영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결단코 아니죠 – 만들어진 법 – 법도 마찬가지고요 – 만을 따라서 사람에게 유죄판결을 내립니다. 일단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법과 사회가 완전히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건 아니에요. 물론 현실의 사회는 ‘보통’ 보편타당하게 구성되어있지만, 그 근간의 핵심적인 몇 가지가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경우가 우린 싫을 뿐이에요. 그것마저도 고쳐야 하는 것이니까요.

기계 몸의 시술이 굉장히 많은 자원과 노력과 고학력 전공자의 기술적 시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저 시술이 엄청나게 비싼 이유는 대충 납득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다빈치 같은 로봇 수술은 비싸요. 왜냐면 그걸 만든 사람들이 그 로봇 팔을 안정성과 정교함이라는 이유로 다섯 번 쓰면 새로 사서 교체해야하게 만들었거든요.

여기서 우리는 가격이 비싼 건 이해하지만, 왜 그렇게 가격이 비싸게끔 만들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착취와 돈벌이 이외의 논리를 찾기 힘들죠. 왜 로봇 팔을 다섯 번만 쓰고 교체해야만 하게끔 만들었을까요? 재정비하고 센서를 스케일링하고 오차를 바로잡으면 못해도 스무 번은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다시 본사로 발송해서 세팅을 교정해달라고 하고, 마모된 부품만 갈아달라고 해도 되잖아요?

작가님은 아마 그러한 구조적 차별을 돈과 가격이라는 눈에 보이는 방패 뒤에서 몰래 조장하는 이들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이런 글을 쓰신게 아닐까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계 몸 시술이 비싸다는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지나치게 국가사회적으로 규제되고 있다는게 문제지. 어느정도 안정규정을 세워놓고 민간 시술을 풀어놓으면 적절한 시장가격을 형성할텐데, 저 위의 수술로봇의 팔처럼 적절한 시장가격이 형성될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무언가의 제약을 걸어둔거죠.

작품 속 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기계에요. 그들은 고기를 소비해서 그런 고가치 자원 – 로봇에 들어가는 귀금속, 정밀부품 등등의 생산에 대해서 – 을 가지면서도 그들을 전혀 배려하지도 도와주지도 않아요. 자기들끼리 이게 불법이라고 땅땅땅 해놓고선 동의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범죄자라고 규정하는거죠.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주인공이 저항하는 것은 그런 기계들의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요. 주인공은 그들의 비도덕적 법률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질서를 위한다는 ‘법’ 개념의 기본 이념에 어긋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어요. 그는 비록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이해해주어서는 안되지만 우리는 그를 처벌하는 법이 비윤리적이라는 것도 알아야 해요. 비윤리가 비윤리를 처단할 수도 있는거죠. 이 말은 주인공이 기득권을 처단한 것과, 법이 주인공을 처단한 것 모두에게 해당돼요. 약간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밟은 꼴이긴 한데, 그럴 수 있는 거에요. 여튼 법이란 건 강제력을 지니고, 사회가 비도덕을 저지른 것과는 별개로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는 마지막을 맞이할 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자폭하지 않아요. 다만 천천히 부서지면서 자신의 마지막 남은 고기 머리만을 남겨둘 뿐이죠. 결말까지 읽고 제가 생각한, 작가님이 굳이 ‘고기’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사회는 인간을 ‘고기’ 취급하고 먹어치우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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