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의 뻘에서 찾아낸 나의 진주, 나의 보물 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하늘의 아이들 (작가: 문낭호, 작품정보)
리뷰어: vela, 19년 12월, 조회 150

0. 서론

 

제가 만약 잠수부라면 깊은 바다 속에서 이 진주를 발견하자마자 마음 깊이 왕건이에요 왕건! 이라고 외칠 겁니다. 심마니였다면 심봤다-! 라고 외칠 거구요. 사람 눈에 띄지 않은 진주라 해서 그 빛이 곱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에게 캐지지 않은 진주라고 해서 진주가 진주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진주는 그 자체만으로 귀한 것이고, 찬란하고 영롱한 빛을 지닌 보석입니다. 작가님, 이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짧은 말로 다 이루지 못해서 이렇게 리뷰로나마 감사함을 답하고자 합니다.

 

1. 진입장벽?

 

하늘의 아이들은 동양풍, 그것도 그 중에서도 드문 몽골풍의 전쟁 판타지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름도, 작위도, 관직체계도 어색하지요. 비록 대괄호로 설명을 넣고 간결하게 역할을 규정지어준다 한들 잘 아는 시스템에 대입하는 것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혹자는 이를 진입장벽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재의 특수성이 동반하는 필연적인 접근성의 저하마저 진입장벽이라고 부른다면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해도 익숙한 소재에 익숙한 전개가 아니라면 진입장벽이 있는 글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만약 작가님이 몽골 고유의 복식, 체계에 심취하여 그에만 몰두했다면 진입장벽이라고 평해 마땅하겠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작중에서 몽골풍은 그야말로 음식에 있어 풍취를 적당히 돋워주는 향신료의 역할이지 그 자체가 메인 디쉬인 것은 아닙니다. 하여 저는 진입장벽이 아니라 소재의 개성이라고 평하겠습니다. 비슷한 소재의 특수성을 지닌 만화 ‘신부 이야기’ 를 볼 때에 몽골식 의복이 어색하다고 보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그게 작품의 강점이 되어서 독자를 유인하는 매개체가 되면 됐지. 저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그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른 리뷰를 보니 요즘 작품들에 비하면 너무 진행이 느리다고 합니다. 작품 소개에 나온 내용이 이루어지는, 정확히는 옥패수탐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만 해도 상당량을 읽어야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게 진입장벽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의 아이들은 확실히 빠른 호흡의 글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이 그를 증명하죠. 그러나 작품소개는 일종의 작품 전체 줄거리를 짧은 문장으로 줄여놓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지 원정대를 예시로 생각해보죠. 프로도가 절대 반지를 얻고 온갖 역경을 극복해 모르도르에 운반해서 부수는 이야기라고 줄거리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절대반지를 얻고 까지만 해도 상당한 양의 글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진행이 느리다거나 재미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빌보에게서 반지를 물려받는 내용, 간달프와 만나는 내용, 절대 반지의 진실을 듣게 되는 내용, 동료들과 함께 호빗 마을을 떠나는 내용… 이 많은 내용들은 모두 필연적으로 이야기에 필요한 내용들이고 거기까지만 작품을 잘라낸다고 해도 얼마든지 재미있습니다. 하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지요. 바로 1화에 황제가 위독하며 다음 황제를 적법하게 가리기 위해 옥패수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위기로 상황에 흥미를 돋우고 가장 중요한 기초 얼개를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그 후에는 실제로 황제가 죽든 말든, 4명의 황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행동에 돌입하는지, 4명의 변경백들이 어떤 포지션에서 접근해오는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재미를 유발할 수 있고 또 유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재미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습니다. 만약 그 내용들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진짜 작품이 루즈한 구성을 취해서가 아니라 작품의 성향과 맞지 않아서 애초에 재미가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설령 옥패수탐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곳까지 읽더라도 그 뒤의 내용 또한 재미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직하게 같은 방식의 글이 이어지니까요. 하늘의 아이들은 대단히 안정된 무게와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는 글입니다. 초반의 무게와 진지함이 작품 내에 전반적으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2. 매력적인 캐릭터들

 

세첸. 아아… 우리의 세첸.

하늘의 아이들은 명확한 주인공이 설정되지 않은 군상극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첸 네르구이가 가장 매력적이고 주인공에 가깝다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삼국지의 촉에서 군주는 유비이고 그 다음 군주는 유선이지만 제갈량이 엄청난 지분을 가져가는 것처럼요. 물론 그 외에도 매력적인 장수, 참모들이 촉에 많은 것처럼 어느 누구 하나 버릴 것 없이 각자의 캐릭터성, 재미를 보장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늘의 아이들의 장점으로 매력적인 캐릭터’들’ 을 꼽을 수 있는 것은 대립축에 서는 인물이라 해도 판에 박힌 듯한, 그저 소모되기 위한 악역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고 복잡하게 얽히는 자신의 입장을 갖습니다. 건국의 정당성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 식의 승자에 의해 쓰여진 철저한 선악구도 대신 각자의 선택과 인과, 최선으로 이루어지는 정국을 보면서 저는 단문 응원도, 리뷰도 잊은 채 몰입했습니다. 황위를 이을 후보자들 모두가 각자의 세력, 조력자와 함께 어느 글의 주인공 못지 않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봤을 때, 그 어느 누구 하나 버릴 캐릭터가 없다는 제 평가를 여러분은 뼈저리게 공감하실 겁니다.

 

3. 뜨거운 심장을 가지되 강철의 이성으로

 

이성도 감성도 모두 글에 소중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한들 거기에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재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계산하는 거 배우려고 소설을 보진 않잖아요. 아무리 감정적으로 공감이 간다한들 합리를 매번 뒤집어버리고 만다면 거기에 남는 것은 그저 빠심으로 가득한 팬픽션 뿐입니다. 전쟁 판타지는 그 특성상 상당한 합리성을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아이들은 그에 대단히 진지하게 답합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이룰 수 있는 세심한 감정선을 이용해 감동적인 장면을 무수히 만들어냅니다. 강철의 이성으로 지배되는 정쟁과 전쟁이기에 더더욱 거기서 피어나는 감동이 극대화되지요. 솔직히 작품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힌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4. 총평

 

최고의 작품. 전쟁 판타지물 중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에 속한다고 봅니다. 진중함의 무게가 다르긴 하지만 동양풍 판타지의 측면에서 봤을 때 채운국 이야기의 느낌도 살짝 받을 수 있는데 채운국 이야기에 더해져있는 가벼움을 좀 더 진지하게 바꾸고 격렬한 감정선은 유지한 채 전쟁물로 전개해나가는 거라고 평하겠습니다. 둘 다 좋은 작품이지만 둘 중에 뭐가 더 좋냐고 한다면 전 하늘의 아이들에 한 표. 다만 플랫폼의 규모적 한계와 소재 자체의 마이너함 때문에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한계점이 뚜렷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대단히 실제 수준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도 작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끌어들이기 좋은 제목이 아니고요. 물론 작품을 본 후에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만.(매를 숭앙하는 문화적 측면에서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이죠.) 정말 좋은 작품인데… 정말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같은 느낌. 군상극 특유의 초반에 캐릭터가 많아서 약간 혼선이 올 수 있는 점과 소재의 한계로 인한 낯선 용어만 견딘다면 그 후에는 극락정토가 열릴 것입니다. 부디 이 좋은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다들 제가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가슴 벅참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덤으로 인기가 올라가 출간되면 더욱 좋고요. 출간되면 무조건 사서 소장할 겁니다. 휴재가 현재 약 3개월 정도 이어졌는데 작가님이 얼른 복귀하셔서 다음 화가 나올 때까지 숨참고 있는 제가 숨쉬게 해주시길 기원하면서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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