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도솔천의 휴일’ 및 ‘맑고 고운 사악’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입니다(그래서 이 감상문에는 이들 연작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뚜렷한 경계 없이 섞여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참 좋게 보고 있는데, 다크한 분위기에 따끈한 내장 냄새를 풍기는 어반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가 제 취향에 맞는 것도 있지만, 그 외에도 해당 연작 특유의 두드러진 특징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시리즈의 가장 고유한 특징이라고 한다면, 저는 주연급의 인물들을 조형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주연들인 홍대식과 장우호에게서 뚜렷이 드러나는 것과 같이, 이들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선 위에 서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개중 인간이 아닌 부분은 일반적인 인간의 윤리관을 아득히 초월해 있거나, 인간보다 월등히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자면 그들을 인간보다 상위의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홍대식과 장우호는 순치된 인성(人性)과 그것을 초월한 신성(神性)의 가운데에 위치한 반신(半神)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이 연작에서 신성이라는 것은 그다지 상서로운 것이 아닙니다. 본 작품의 메인 악역인 두억시니처럼, 이 시리즈의 신적인 존재들은 자애나 지혜보다는, 인간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졌지만 야만성과 정동으로 가득 찬 원시적인 괴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속성은 신에게 접근하거나 신을 통제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소유하고 구사해야만 하는 ‘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감정에 묶여 있는 주인공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신성은 누리는 것보다는 견뎌내야 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때로는 유용하지만, 때로는 장애물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걸리적거리는 핸디캡인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인간에게도 신에게도 속하지 못한 존재이면서, 야만적인 신성을 가진 채 문명화된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망을 가지기에, 살아가는 것 자체가 끊임없는 윤리적 투쟁에 다름이 아니게 됩니다. 이처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들에게 매력이 없다면 그게 바로 이상한 것이리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 연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 바로 인물들에게서 나온다고 (개인적으로) 봅니다.
여기에 더해, 작품의 분위기와 불화하는 것 같은 서정적인 문체도 좋은 쪽으로 한몫 하는 것 같습니다. 본 작품이 묘사하는 신성이라는 속성의 역설적인 면모처럼, 썩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내용이 감성적인 문체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는 건 정말로 즐거운 경험인 것 같습니다(이런 측면은 ‘맑고 고운 사악’이 제목에서부터 훌륭히 표현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선을 좀 넓혀서, 저는 이 연작이 가진 정체성을 ‘(1) 인성과 신성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이, (2) 약점으로 가득한 능력을 구사하면서 (3) 짱짱쎈 야만적인 신적 존재에 맞선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번에 해당하는 내용을 더 좋아하지만(그래서 ‘맑고 고운 사악’이 더 취향이었지만), 이제 와서 보면, 아마 대다수의 독자들은 (2)번과 (3)번에 해당하는 내용이 줄거리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2)번과 (3)번에 해당하는 부분은 ‘도솔천의 휴일’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도 ‘설정상 본질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능력들 혹은 기물(奇物)들 간의 충돌’이라는 컨셉 하에서 마찬가지로 모난데 없이 기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능력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인간이기에 가지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점을 나타내게 된다는, (2)번에 해당하는 부분이 좋았는데, 이 설정은 ‘도솔천의 휴일’에서 상당히 잘 활용되었고, 이 ‘두억시니의 한’에서도 장우호의 능력에 잘 반영되어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억시니를 불러내기 위해 아들을 빡치게 만드는 식으로 다소 변형된 형태로도 제시되어 딱히 아쉬운 부분 없이 묘사된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만약 이 작품, ‘두억시니의 한’에서 구태여 부족한 부분을 하나 찾아내자면, (1)번에 해당하는 측면 중 핵심 인물인 장우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묘사가 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무리 버린 자식이라는 설정이지만, 장우호가 자기 아들에 대해 지나치게 기능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부분이나 쉽게 이해하기가 힘겨웠던 성적인 욕망 등을 포함해서, 장우호의 ‘인간적인–일반 윤리적인’ 영역을 반영하는 내면 묘사가 다소 단락되어 있는 것 같기에 감정이입이 좀 어려웠었다는 판단입니다.
저는 앞서 말했듯이 본 작품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윤리의 경계선에 서서 고통받고 고뇌하는 캐릭터들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인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는 처지인 ‘인간적인’ 부분이 가지게 되는 사고방식이나 감정 등을 충분히 묘사해주면서, (2) 약점으로 가득한 능력을 구사하며 (3) 짱짱쎈 야만적인 신적 존재에 맞선다는 기조를 유지해주면, 본 시리즈가 가지는 장점들을 빠지는 부분 없이 활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려보고자 합니다.
그럼,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