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면 죽는 세상. 다른 세상 이야기지요, 아무렴.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임모탈리스 엑스 마키나 (작가: 렝고,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19년 11월, 조회 85

법정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숙명적으로 대결 구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점이 있습니다. 국내법은 다르지만 미국은 아예 사건 이름 부터가 아무개 대 아무개 사건처럼 대결의 주체를 밝히고 있을 정도지요. 법정은 승자와 패자, 흑과 백이 갈리는 장소이면서 어쩌면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재판의 결과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법정물도 있습니다. 사법제도 역시 기성사회의 산물이기에, 사회 그 자체에 반항하는 인물에게 법원의 결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겠지요. 이 때의 법정은 대결의 장이 아닌 억압의 상징이며, 성토의 무대가 됩니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스포일러에 유의 부탁드립니다.

 


 

기계 몸체를 통해 수명의 극복이 가능해진 세상이 왔으나 가진 자들의 기술 독점에 회의를 느낀 주인공은 자본가 놈들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연쇄살인범이 되어 불공정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합니다만, 뜻을 모두 펼치지 못한 채 검거되어 법정에서 자결의 형태로 순교하고 맙니다.

본 작품의 무대는 법정 내부를 벗어나지 않으며, 관련 정황은 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덕분에 단편 다운 빠르고 압축적인 전개가 가능했으나, 이렇듯 법정과 공판 절차 자체가 중요한 요소임에도 아쉽게도 디테일한 면이 부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화폐 단위 등을 볼 때 본작의 배경이 대한민국이고, 현행의 사법제도가 적용된다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소위 나쁜 놈들의 면면을 볼 때 아주 관련이 없는 곳이라고 보기는 힘든 만큼 적용법조나 공소사실, 판결문 등 재판과 관련한 장치가 더 치밀하게 표현되었다면 독자로서 더 몰입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본 작품에서 법정은 범죄 혐의에 대한 공방이 이뤄지는 장소라기 보다는 주인공의 선언을 위해 마련된 무대로 사용되는 만큼 그 자체로 치명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입을 빌어 나타나는 주제의식, 즉 영생이 가능하다면 이는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어야지 일부 기득권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작품에서 나타나는 영생불멸의 방식이 다소 모호하다는 점이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기계 육체를 통한 불멸은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닙니다. 은하철도999도 원래는 기계 몸 구하러 가는 이야기지요. 이 작품의 경우 어쨌든 비싸다는 설명만 있다면 기계 육체를 얻는 과정이 자세히 설명될 필요는 없지만, 작중에서 전개상 드러나는 부분들이 의문스러웠습니다. 작중에서 처음에 나타나듯, 기계 육체의 주요 장점은 불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작중에서 기계 몸에 대한 묘사는 오히려 수명 즉 지속가능성보다는 성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일단 주인공의 첫 살인에서부터 기계 팔이 없어진 약골이라 쉽게 제압했다고 말하지요. 물론 내장이 기계면 보통 사람보다 오래 살긴 하겠지만, 손발가락을 기계로 바꾸는 건 무슨 도움이 되기에 50만 코로나라는 거금을 들이고자 하는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와 관련, 작중에서 주인공은 여성이라 학업에 대한 차별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본인의 성별을 스스로 정하고자 하는 등 기계 몸의 이점을 어느 정도 폭넓게 취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육체적인 제약의 극복은 사실상 영생불멸에 비하면 부차적일 수밖에 없기에 기계몸의 영속성과 관련한 내용이 더 부각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분명히 영생의 기회가 불평등하게 주어진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는데, 그 분노가 표출되는 대상은 딱히 기계몸을 통해 수백년을 살면서 남 위에 군림하는 등 영생하고 있다고 설명되지는 않는 점에서 분노의 초점이 약간 어긋나 있다고 봅니다. 주인공은 그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영원히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며 살아갈 것이기에 그들을 살해했다고 하지만, 그 예측의 정확성은 그렇다 치고, 범행이 기수인 편이 사형 선고에 더 타당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주인공이 살해하는 대상들과 관련해서, 주인공이 너도 이런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윤리적인 균형감각 면에서 이게 주인공 손에 비명횡사할 죄를 지은 사람들인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사채업자, 부패정치인, 악덕 건물주 다 나쁩니다. 죄질에 따라서는 살인만큼 나쁠 수도 있구요. 교황님도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것은 원래부터 나쁘고, 대개 다른 살인의 대가가 아니면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딱히 누구를 죽였다고 묘사되지는 않지요. 더 미묘한 건 주인공도 이들이 진짜 최상위 계층은 아니고, 중상위 정도나 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부자인게 죄라고 쳐도 이들은 그렁저렁 잡범 같지만 어쨌든 부자니까 죽어 마땅하다는 말이 됩니다만, 뭔가 2천만원 넘는 차 타는 놈들은 다 죽여야 된다던 지존파 생각이 나서 약간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사회불평들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만, 주인공의 방식으로 상위 0.1%만 제거하고자 해도 현재 인구에서 5만명을 암살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전이 있는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의도를 밝히고 공개적으로 살인을 하고 다녔으면 테러리즘을 동원한 사회운동 비슷한 것이 되었을텐데,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았지요.

범죄의 재구성 측면이나 어딘가 한국적인 사이보그 사회의 도래에 대한 묘사 등, 읽는 동안 시선과 흥미를 잘 붙잡아 두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의 행위나 주장에 이입하기 어려웠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하는 소설의 전제 자체이므로 소설에 대한 비평이 아닌, 주제와 관련한 몇 가지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도 돈 있으면 오래 삽니다. 의학의 발달을 고려하면 앞으로는 훨씬 더 오래 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돈이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영원히 살고, 나는 돈이 없으니 때 되면 죽어야 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대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 사람들은 누군가는 마이바흐를 타고 나는 자전거를 타는 현실을 대충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저 새끼도 언젠가는 어떤 이유로든 죽는다는 확신이 없다면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살 수도 있는데 당장 분노한 대중에게 끌려 나와 죽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요. 따라서 영생이란 매우 비밀스런 방식으로 극히 일부의 인간에게만 제공되거나, 발명 이후 빠르게 대중화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영생자들의 사회는 지금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겠지요.

한편,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은 나쁜 현상이고,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아주 나쁜 놈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놈들이 기회가 되면 영생불멸을 독점해서 노동대중을 영원히 착취하리라는 혐의를 씌우는 것은 정당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누군가를 악마화 하는 건 나, 또는 우리를 좋은 편으로 만드는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별로 그럴듯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는 대개 시시한 약자들과 시시한 강자들만 있다지요. 모두가 영원히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남들이 영생하는 걸 막을 필요가 있을까요? ? 수십억명의 모탈 노예를 거느린 이모탈 제국의 신이 되기 위해서? 그 비슷한 걸 시도한 놈이 가까운 70여년 전에 인민웨이브 쳐맞고 죽긴 했지요. 그나마도 대중의 지지 없이는 시도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가진 자들이 탐욕스러워지는 것인지 탐욕스럽기 때문에 가진 자가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을 죽음으로만 교정 가능한 절대악으로 보는 시각은 진지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못 말리는 탐욕꾸러기지만, 다만 그들처럼 거악을 저지를 능력이나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정말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모탈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실은 영생의 가능성에 대해서 천국 만큼이나 현실성 있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누군가의 견해에 따르면 세상에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무엇도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고 합니다. 영원한 삶은 당연히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겠지만, 영원한 고통과 절망의 길을 활짝 열어젖힐 가능성도 있겠지요.

어쩐지 철학 학술제와 관련이 있다고 하시니 이런저런 잡설로 난삽한 리뷰가 되었습니다. 작품 자체가 함의를 많이 담고 있다 보니 그런 듯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글은 좋은 글일 수밖에요. 앞으로도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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