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의 이유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무왕관 (작가: 김유정, 작품정보)
리뷰어: 오렉시스, 19년 11월, 조회 99

신이 타락한 자들을 쓸어낼 것이라고 경고할 때, 아브라함은 신에게 간청한다. 의인 50명이라도 그곳에 있다면, 그들을 벌하지 말아주십시오. 신이 알겠다고 대답하자, 아브라함은 다시 간청한다. 의인이 40명이라도 있다면, 그들을 벌하지 말아주십시오. 신이 다시 알겠다고 대답하자, 아브라함은 계속 요청한다. 서른 명 만이라도. 스무 명 만이라도. 결국 신은 열 명이라도 의인이 있다면 그들을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창세기 18-19장, 그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에 불타 사라지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신은 이 마을에 두 천사를 보낸다. 롯이 그들을 맞아주지만, 이윽고 마을 남자들이 찾아와 손님들을 당장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롯은 손님들을 강간당하게 둘 수는 없다며, 남자를 모르는 자신의 두 딸을 대신 내어놓는다. 천사들은 마을 남자들의 눈을 모두 멀게 한 뒤 롯의 가족에게 마을을 떠나도록 경고한다. 단,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경고를 무시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만다.
의인으로서 신의 용서를 받고 유일하게 마을을 떠날 수 있었던 롯은, 그러나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마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차반이다. 그는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기꺼이 폭력에 희생시키려는 아버지다. 그는 여성을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전혀 의롭지 않은 인간이며, 어떤 의미로는 여성혐오라는 원죄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죄인이다. 그리고 신조차 그러한 면모를 전혀 벌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소설 <나무왕관>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파멸을 가져다주기 위해 마을로 향하는 나그네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 “끔찍하고도 저주받은” 소식을 전하러 “오래 걸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여정의 끝이 될지, 아니면 시작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파국의 운명을 뒤로 미룰 것인지, 아니면 당장 내일 운명을 실현시킬 것인지.
나그네가 마을에 도착하여 발견한 것은 여성을 버러지처럼 다루며 폭행하고 강간하고 내다팔고 죽이는 인류의 오랜 원죄의 현장이다. 나그네가 처음 마을에서 마주하는 사건은 아버지에게 맞아죽은 한 소녀의 장례식이다. 나그네는 죽은 소녀를 추모하기 위해 작은 나무왕관을 건네지만, 아비라는 자는 그마저 낚아채어 술 한 잔을 더 사먹으려 든다. 그리하여 추모의 도구가 될 것이었던 나무왕관은 파국의 징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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