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를 읽고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지우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 19년 11월, 조회 67

엄숙하게 선언하겠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에요. 오늘날에 놀랄 일은 아니에요. 식스 센스 이후로 마지막에 틀을 뒤집는 ‘반전’을 하는 작품들은 수백 개는 나왔으니까요. <지우>를 포함해서요.

 

<지우>는 서사라고 부를만한 극적인 사건이 없어요. 굳이 따지자면 ‘나’가 지우에게 어렴풋한 감정을 품다가 사귀게 되고, ‘나’가 지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줄거리일 거예요. 읽기 쉬운 단문이 기다란 장문보다 가치 높은 것이 아니듯 서사가 뚜렷한 작품이라고 서사가 모호한 작품보다 좋은 것은 아니에요. 그저 속성이 다를 뿐 각개의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우>는 속성이 없다시피 해요. 서사가 모호하다면 모호한 부분을 채우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텐데, 건질 거라고는 마지막 반전뿐이에요. 그마저도 아귀가 맞지 않지만요. ‘나’와 지우가 동일 인물이라면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동창회에서 지우를 보는 사람이 있거든요. 뭐, ‘나’는 지우라는 환각과 환청을 겪는 중증환자로 추정되니 동창회도 환각이었다고 하면 말이 될 거예요. 하지만 빈 서사를 채우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반전’만으로는 독자를 놀라게 할 수 없어요. 앞서 말했듯이 식스 센스 이후 비슷한 작품들이 많았으니까요. 게다가 식스 센스는 반전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성장(혹은 또 다른 반전)이 있었어요. 단순히 반전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말이죠. 비슷한 성격의 작품을 쓰고 싶다면 식스 센스보다 더 많은 것을 제시해야 흥미로울 거예요. 원본보다 나은 면이 없다면 모사품도 못 되니까요.

 

그래도 <지우>의 상징적 의미는 꽤 재밌어요. 제가 끌린 부분도 이 지점이고요. ‘나’와 ‘지우’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지우에게 주는 사랑과 나누고 싶어 하는 애무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은 욕구’에 의해 드러나는 행동이에요. 주인공과 지우가 섹스를 못 하는 이유는 지우가 환각이어서가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 해서고요. 허락하지 않은 상대와 하는 성행위는 섹스가 아니라 강간이니까요. 결국 작품에서 진행되는 연애는 퀴어 로맨스가 아니라 ‘나’가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이에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나는 ‘지우’를 반쯤은 받아들인 것 같아요. 섹스하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도 했고 주인공 ‘나’가 임지우라는 사실을 자각했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나’의 감정에 집중한다면 <지우>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료는 나쁘지 않습니다. 반전에 열을 올리지 말고 인물을 구체화 시켜 보세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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