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믿었다

  • 장르: 추리/스릴러, 로맨스 | 태그: #사건8로맨스2 #판타지 #정치스릴러 #미스터리 #쿨시크녀 #능글남 #유쾌한데진지함 #군상극
  • 평점×494 | 분량: 32회, 744매
  • 소개: 세자 전하의 연례 행차 일주일을 앞둔 어느 날, 평화로운 항구 도시 셀루스에서 이마에 숫자가 새겨진 채 사망한 견습 궁정 마법사가 발견된다. 100년 전, 서기 1508년. 광기... 더보기
작가

난네코 님의 리뷰에 드리는 글 – 길드, 대학, 그리고 마법사 길드

9월 17일

일전에 난네코 님께서 작성해주신 리뷰

를 읽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베풀어주신 후원에 더해, 리뷰에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래의 글은, 난네코 님의 리뷰에 대한 저의 견해입니다.

 

 

실수했다…

이 리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심정이었습니다.

 

길드는 11세기 이후 서부-중부 유럽에 걸쳐 나타난 독특한 집단입니다.

당시 유럽 대륙 내에는 상공업이 유독 발달한 지역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수공업자들이나 상인들은 이익을 보전하고 권리를 내세우기 위해 조직을 결성했는데, 이것이 길드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상권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길드가 동맹을 맺기도 했지요. 대표적인 예로는 현재의 독일 지역에서 자생한 한자(Hansa) 동맹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상호조합이나 공동체 등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썩 들어맞는 표현은 아닙니다. 길드의 특징 중 하나가 도제식 가르침이기 때문이지요. 기존의 길드원이 신규 길드원에게 제조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이 지식의 전수는 특히나 수공업자 길드에서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식의 전수가 매우 폐쇄적이었다는 문제요. 제조 노하우, 판매 노하우, 판매 루트, 유통로… 이 모든 정보는 오직 길드원들에게만 전해졌습니다. 비 길드원에게는 철저하게 배타적으로 굴었지요. 이것이 길드의 족쇄가 되었습니다.

지식은 전파되고 공유되면서 더욱 발전합니다. 지식과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자연히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새로운 의견이 제시되고, 상호 간 치열한 토론과 교류가 일어나며, 그 과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이 탄생합니다.

길드의 폐쇄적인 지식노하우 전수 시스템은 이 점을 간과했습니다.

 

제조, 판매, 유통 노하우가 아닌, 지식 탐구 그 자체만을 두고 설립된 지식 공동체가 역사상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바로 대학입니다.

유럽에서 대학은 12세기부터 존재하였지만, 로마 교황청이 권위를 잃어가고 권력이 서서히 국왕에게로 옮겨가던 무렵부터 대학은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시기로는 16세기 말-17세기 즈음이 되겠군요.

어디 가서 지구가 돈다는 말로 혹세무민하지 말라는 교황의 경고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한마디 쏘아붙이고 나왔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이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계산을 70회나 거듭하며 행성의 공전 궤도를 측정하고, 나아가 뉴턴의 물리학/수학 이론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쳤던 요하네스 케플러 또한 이 시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를 탐구한다는 자유로운 정신 하에 설립된 대학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왕실은 지식인들을 대우하기도 했지만, 권력 투쟁의 흐름 속에서 지식인들을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신교가 탄생하고, 각국의 수장들이 종교를 왕권 강화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난세가 펼쳐집니다.

지식인들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지역으로 망명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였습니다. 30년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에서 완전 독립, 종교의 자유도 보장받았으며, 공화정을 설립했거든요.

그 모든 혼란을 겪으며 진리 탐구의 자유를 갈망한 지식인들은… 30년 전쟁을 거치며 과학 혁명을 이루어냅니다. 전쟁 이후 유럽의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지요. 우리가 아는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요하네스 케플러에 이어 후대의 아이작 뉴턴까지… 모두 그 시대 사람들입니다.

이 시기 발전한 유럽의 과학, 수학, 철학은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상업과 공업, 군사력의 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가 작품 속에서 대강 만든 마법사 길드는, 중세의 수공업자 길드와 17세기 이후의 지식 공동체-대학을 대강 합쳐놓은 집단입니다.

기존의 길드원이 신규 길드원에게 1:1로 마력을 다루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는 설정은 있지만, 40화 즈음에서야 대강 드러납니다.

이 점을 작중 초반에 좀 더 분명하게 나타냈다면 좋았을 텐데.

리뷰를 보며 설명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또, 남자 주인공 글렌 마일스는 길드 교원이라던데. 마법사 길드 수련원의 교원이라니. 이건 대체 뭐냐? 마력 활용 노하우가 길드원 간 1:1 도제식 전수로 전승된다면, 대체 수련원에서 교원은 뭘 가르치는 거냐?

연재분에서는 이런 의문이 당연히 드셨을 것입니다.

마법사 길드의 이 ‘수련원’이 대학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수련생들에게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하고, 지식 보급에 앞장서 도서관도 개방하고… 현재의 대학도 여전히 수행하고 있는, 그런 것들이요.

이 부분 역시 설명이 미흡했던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해가 어려우셨다면, 설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저의 탓입니다.

다만 마법사 길드 내의 연구는 주로 마력의 실용적인 측면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마력을 실생활에 도움되도록 활용하자는 길드의 설립 정신에 따라서요.

 

아까 전, 인류 역사에서 케플러나 갈릴레오 등의 예를 들었지요. 당시는 점차 과학 지식이 발전하던 시기였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선박 건조 및 포탄 각도/범위 계산, 즉 군사학에의 응용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례를 빌려와 작중 시대에 그대로 녹여냈습니다.

기술 발전에는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자금을 지원하는 정치세력이 있습니다. 그 정치세력의 가치관은 마력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자는 마법사 길드의 정신과 융화되지 못합니다. 결국 곳곳에서 불화가 일어납니다.

이는 작품에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설정이며, 작중에서는 정치세력 간 대립으로 나타납니다.

아, 설정 설명하면 재미없는데…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여하튼, 작품을 보시면서 ‘마법사 길드는 대체 뭐하는 집단인가?’ 라는 의문이 드셨다면… 네. 제 설정 설명이 미숙했던 탓입니다. 초반에 이런 설정을 간단하게라도 설명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식 출간본에는, 이 설정과 관련하여 초반에 설명이 한두 줄 들어갑니다.

출간본 버전은 설정 이해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긴 리뷰를 통해 저에게 부족함과 미숙함을 일깨워주신 난네코 님께, 다시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