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어.”

대상작품: <워터파크의 해파리> 외 1개 작품
큐레이터: 일월명, 23년 8월, 조회 114

큐레이션에 개인사를 적기는 좀 민망하지만, 전 주 6일 아르바이트를 1년 넘게 하고 있고, 작년에 주어졌던 큰 기회 하나를 지난 5월에 결국 날렸고, 지난 달부터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주변에 알리니 함께 파트 일을 하는 제 동료 분은 제 나이대 사람들은 정신병원 가는 데 거리낌이 없던데 뭘 그렇게까지 버텼냐 물으시더군요.

과거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선풍적 유행을 끌었을 때를 기억하는 분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 후에 나온 ‘아프니까 환자다.’라는 변형도 아시겠죠. 이걸 좀 더 거칠게 정리하면 ‘청춘은 환자다.’, 내지는 ‘청춘은 질병이다.’라는 문장을 뽑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병이 심해져 바깥으로 가면 세상에 대한 증오가 되고, 안으로 향하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우울감이 됩니다. 그리고 개인의 예민한 천성 때문이든, 극복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 때문이든,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이든, 누군가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병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게 그 누군가만의 탓은 아닐 겁니다.

오늘은 바로 그 누군가 중 우울과 싸우고 지는 이들의 이야기 두 편을 소개 합니다.

 

이 큐레이션을 쓰기로 마음먹게 한 작품입니다. 마노 작가님의 작품 전반에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생길 수 밖에 없는 팍팍함이 있습니다. 그걸 다정한 방식으로 극복하는 글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냥 담담히 굴복하고 수용하는 걸 선택하죠. 비극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런 끝으로만 줄 수 있는 위안도 분명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팍팍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걸 그만 두고 싶을 때 어떻게 그만 두면 좋을지 정하지 못해 지리하게 늘어지는 시간을 겪어본 분들은 그게 정말로 끔찍하기 그지없다는 걸 아실 테죠. 그런 묵은 고름 같은 시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끝 밖에 없습니다.

 

지난 슬라임 큐레이션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소개드리지는 않지만, 조소아 작가님의 [나를 먹어도 좋아] 역시 이번 큐레이션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제 우울증의 병리적 증상은 약한 자살 충동과 강한 자해 충동입니다. 약을 먹는 지금은 자살 충동이 잘 눌리지만, 후자는 별개더군요. 병원서 받은 처방전은 손목에 노란 고무줄을 차고 있다가 충동이 들 때 마다 통증이 느껴질 만큼 튕기는 겁니다. 놀랍게도 효과가 있어요. 나를 정말 해하는 대신 일종의 대리 만족을 뇌에 주는 거죠.

문학의 목적 역시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카타르시스입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이번 큐레이션이 세상을 포기하고픈 충동을 대리 만족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건 언젠가 지나가니 부디 사라지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