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빵필승! 감상

대상작품: 벚꽃맛 간장, 드디어 출시! (작가: 흐르, 작품정보)
리뷰어: 비연, 19년 11월, 조회 54

흐르, 벚꽃맛 간장, 드디어 출시!

 

 

유쾌하다.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시종일관 유쾌하다. 분홍색 천지였던 편의점 가판이 떠오른다. 벚꽃 맛 감자칩, 벚꽃 맛 팝콘, 벚꽃 맛 맥주, 벚꽃 맛 아이스크림…….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유럽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잔뜩 사 왔던 초콜릿 맛을 기억한다. 화장품 가게에 진열된 색색의 화장품들을 으깨어 먹는다면 딱 이 맛일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벚꽃 맛에 대한 기억도 비슷하다. 벚꽃 맛 감자칩과 팝콘은 정말 정말 맛이 없었고, 맥주도 마찬가지였으며, 아이스크림은 샴푸를 먹는 것 같았다. 아니, 잠깐, 근데 내가 저것들을 다 내 돈을 주고 사서 먹었었다고?

 

작품에서는 급기야 벚꽃 맛 간장이 등장한다. (초록 창에 검색한 결과 다행히 실제로 출시된 것은 아닌 듯하다. 휴!) 플라스틱병에 꽃무늬가 프린팅되었을 뿐만 아니라 간장 자체가 분홍색이란다. ‘매일의 식탁 위에 봄기운을 불러오세요’라는 카피 문구는 어쩐지 기묘하다. 봄나물도 아니고 벚꽃 맛 간장이 식탁에 봄기운을 불어넣는다니. 따사로운 햇살이나 싱그러운 봄 내음, 막 돋아나는 파란 새싹, 맑게 갠 하늘이나 얇아진 옷차림, 하다못해 꽃가루나 황사도 아니고 분홍색 불고기로 봄을 맛본다니!

 

진절머리가 절로 나는 이야기는 화자가 유튜브 영상에 댓글 하나를 달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열풍처럼 퍼져나간 벚꽃 맛 제품들이 사실은 어떤 악의 무리가 꾸미고 있는 음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롱패딩을 벗기 전부터 벚꽃 연금이 들려올 때마다 일부러 나 들으라고 세상이 작당 모의를 한 것은 아닌지 심각한 고민을 하던 내게 이 음모론은 반갑고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킥킥 소리 내며 작품을 읽은 것이 얼마 만인지!

 

“아무리 벚꽃이 싫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벚꽃 하나로 누가 죽이려고 드는데, 저라면 그냥 받아들였을 거에요. 현실을요. 그렇지만 예진 씨나 진수 씨는 굳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블라썸을 파괴하려고 하잖아요. 왜죠?”

“…그래서야.”

“네?”

“그 녀석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니까. 그래서라고.”

(중략)

“그래, 네 말대로야. 그냥 벚꽃이 싫었을 뿐이라면 우리도 그냥 가만히 있었겠지. 아지트랍시고 반지하 방을 전전해 가며 이런 짓을 할 일도 없었을 거야. 하지만 먼저 건드린 건 그쪽이야. 그 새끼들이 조사를 했다는 이유로 내 친구들을 죽이기 시작한 이상 멈출 수는 없어.”

 

 

다만 아쉬운 것은 체리 블라썸이 음모론자 혹은 반대론자들을 대했던 태도에 관한 부분이다. 모든 벚꽃 맛 제품의 뒤에 있었던 체리 블라썸은 반대론자들의 신상 정보를 전부 알고 있을 정도의 권력을 가졌고, 반대론자들을 찾아내어 죽일 정도로 가차 없는 태도를 취해왔다. 장난처럼 시작된 ‘벚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모임’에 취하기엔 다소 과한 반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까지 과하게 반대론자들을 제압했는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는지 후반부에서 설명할 것을 기대했으나 빠르게 상황이 마무리되면서 이 역시 흐지부지 사라져버렸음이 아쉽다.

 

벚꽃연금 이후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라며 커플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던 곡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던 연인들에게는 썩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 노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사랑에 대해 비꼬듯 말하는 것을 즐거이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은가. 어쩌면 체리 블라썸도 그와 같은 마인드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어떠한 이유로 벚꽃을 끔찍하게 사랑하게 된 체리 블라썸(사실 이 이유에 대해서도 작품에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이 반대론자들로부터 부정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던가……. 그러나 그들이 가졌던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생각해보자면 이것만으로는 체리 블라썸의 반응을 설명하기가 영 부족하다.

 

그럼 배후에 있다던 ‘한 남자’가 사실은 봄 그 자체였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봄바람이 살랑대기 시작할 때에 맞추어 마음도 몽글몽글 부드러워짐을 부정할 수 없고, 그래서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 되어 고작 열흘 피는 벚꽃에 열광함을 멈출 수 없다. 벚꽃에 중독되고, 세뇌되고, 지배되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다. <벚꽃맛 간장, 드디어 출시!>는 끝내 배후에 있던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 따위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봄이 되기도 전부터 거리 곳곳에서 벚꽃연금이 울려 퍼질 것을, 그 배후에는 어떤 악의 조직이 아니라 ‘봄’이 있음을 안다. 체리 블라썸은 산산조각이 되었지만, 결국 다음 봄이 오면 그놈의 벚꽃 맛은 다시 한번 활개를 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차라리 다음 봄에 벚꽃 맛 분홍색 간장을 빨리 출시해버리는 기업이 승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뚱맞은 결론에 다다른다. 음, 선빵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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