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작품을 읽은 후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정통 판타지가 드문 시대입니다. 판타지는 그 부흥 이래로 긴 역사를 쌓아왔고 이윽고 시간이 흘러 고전이 되기까지 했지요.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그것은 그만큼 긴 세월이 오면서 정형화되었고 식상한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이영도 작가를 위시한 몇몇 한국 판타지 1세대 작가들이 한 때 명작으로 일컬어질 마스터피스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 흔적조차 찾기가 힘듭니다. 그저 지난 시대의 고전을 두고 끝없이 핥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정통 판타지의 팬으로서 견디기 힘든 겨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찾아낸 겨울불꽃의 시대는 비록 아직 그리 많은 양이 연재된 것은 아니어도 추운 가슴에 작은 온기를 전하기에는 충분한 불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주.
강대한 용.
마법과 같은 기적.
폐쇄된 집단에서 밖으로 떠나는 모험의 시작.
중세 종교의 색채.
이 모든 요소는 판타지의 로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진부한 요소이기는 해도 이것만 가지고 잘 조합하기만 하면 정통 판타지풍의 글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모험의 초입에 들어선 브리다가 앞으로 어떤 여정을 겪을 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그 앞길을 오래된 손짓으로 축복합니다.
지금까지(31화까지) 브리다가 작중에서 보여준 행동 중에서 중요한 행동은 2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괴롭혔던 세 아이 중 죽이려는 시도에는 동참하지 않았던 캐릭터에 대한 용서. 다른 하나는 스스로가 이교도임을 드러내면서까지 기적을 사용해 기사의 종자를 살린 선택. 어떤 상황에 마주치고 보이는 선택은 그 존재의 사상과 행동원리를 극명하게 나타냅니다. 단순하게 캐릭터에 대해서 묘사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와 닿지요. 저 2가지 행동은 비록 아직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인 브리다의 성향을 상당히 선명하게 규정지었다고 봅니다. 겨울공의 입을 빌어 말하자면 그윽한 영혼의 향기를 풍겼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는 앞으로의 여정에서 분명하게 독이 될 선(善)이기도 할 것입니다. 선의가 악의를 이기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세상에는 악의가 득실거리고 항상 선의가 이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기사의 종자를 살리는 선택을 했을 때 겨울공이 만족했다는 점입니다. 겨울공은 위험천만한 여정의 안전망이자 스토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강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어지간한 일은 겨울공의 비호 아래에 해결되겠지만 중반 이후로 가면 역시 겨울공의 부재, 혹은 겨울공으로도 해결하기 힘든 역경에 처하게 되겠지요. 그 때에 이 매력적인 캐릭터 둘, 용과 소녀는 어떤 선택을 보여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이건 너무 넘겨짚기려나요.
소베린도 마음에 드는 남주입니다. 약간 전형적인 선남선녀 커플의 룰루랄라 세계 유랑기 같은 느낌이 들지만 판타지는 그 맛 빠따죠. 영웅전설 3 4 5 시리즈가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어찌됐건 불씨는 피워졌습니다. 주사위도 던져졌죠. 빠르고, 길게 가면 가장 좋겠습니다만 창작의 고통을 익히 알기에 묵묵히 기다리면서 작품과 함께 가려고 합니다. 언제나 응원할 테니 건필하시기 바라면서 이만 짧은 감상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