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즐거운 좀비 소설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나는 좀비를 이렇게 만들었다. (작가: 비나인, 작품정보)
리뷰어: 비연, 19년 9월, 조회 119

비나인, 나는 좀비를 이렇게 만들었다.

 

내가 제목에서 유추한 것은 두 가지였다. ‘나’라는 인물과 ‘좀비’라는 소재. 아마 ‘나’라는 인물이 등장할 것이고, 높은 확률로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축이 될 것이라는 추측, 그러나 이 추측은 아스라 왕국이라는 다소 판타지적인 장소에서 사는 56세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의사 홍천수가 등장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인공지능 영상판독 기술로 인해 실직자가 되었고 다른 국가로의 망명을 신청하고 있는 그는 본인이 맥도날드 주에 세워질 거대 좀비 놀이 공원인 좀비랜드 개발에 관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좀비랜드를 찾는 방문객들은 기본적으로 억압된 영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좀비랜드를 찾는 이유는 오랜 평화시대의 지속, 시스템이 옭아맨 자유를 정신적으로 환기(ventilation)시키고자 하는 욕구의 자연스러운 발현입니다.

사람이 로봇에게 위해를 가해 얻는 만족감은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경험가능한 것입니다. 좀비랜드를 꼭 방문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들이 방문을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만족은 실제로 적다고 봅니다.

때문에 좀비는 로봇이 아닌 진짜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진짜 사람으로 운영되었을 때만이 비로소 사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 제안은 놀랍게도, 현재 비밀리에 진행 중인 좀비랜드의 좀비는 로봇으로 만들어질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나아가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이 로봇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남긴다. 그리고 그는 본인이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렇게 된 배경에 관해 설명한다. 흥미롭게 이어가던 글은 여기서부터 아쉬움이 발생하는데, 첫째 좀비랜드 및 좀비 개발의 이유가 다소 부실하다는 것이다. 좀비랜드 개발의 이유는 ‘성인을 위한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놀이 공간’을 만들고자 함이고, 좀비 개발의 이유는 세계 정복의 야망을 품은 한 왕의 명령 때문이다. 그나마 좀비랜드 개발 이유는 앞서 좀비를 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가에 관해 설명하면서 언급했던 만족감, 살인의 본능, 안전의 기쁨, 악의 타도, 살아있다는 느낌 등으로 보완이 되지만, 좀비를 만들었던 이유는 단지 폭군의 명령 하나다. 의료 기술이 100년 정도 뒤처진, 제대로 된 군사력은커녕 다른 국가에 상륙할 수 있는 기술력조차 없는 전제군주국가 폭군의 명령 말이다. 이렇게 미친 왕이라면, 박사가 될 정도로 교육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국가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더 일찍 망명을 신청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스크린 앞의 세 명의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회색의 유니폼을 입은 중년의 남성들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곧 암전상태로 들어가고 자동으로 방 안의 불이 켜졌다. 여전히 이 셋은 멍한 표정을 했다. 그 중 하나가 분위기를 전화해야겠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휘이 휘이 돌리며 먼저 말을 꺼냈다.

 

둘째, 홍천수의 영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세계관을 풀어가고 이야기를 진행함에 속도감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만 보여준다는 단점도 있다. 좀비를 왜 만들어야 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어떤 문제로 인해 망명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빠르게 설명할 수 있었으나 입체적이지는 못했다. 입체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얼핏 상상의 여지를 넓힐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단편소설이기에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할 필요는 있었겠으나 영상의 방식으로 한 인물의 입을 통해 이야기의 단면만 보여주는 것보다는 늘어지는 설정들을 쳐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영상이기에 남길 수 있던 여운마저도 명확하지 않다.

 

남자들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나가면서 영사기 전원을 끄는 것을 깜빡했다. 이 영사기란 물건이 후진국 자료 열람을 위해 먼지 털고 꺼낸 오래 된 기계였기 때문이다. 문이 닫히고 방의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지니 영사기 전원이 저절로 다시 켜졌다. 화면에 아까 봤던 마른 체형의 안경 쓴 대머리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흠 흠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아- 아- 보이십니까. 카메라 이거 켜진 건가.”

 

 

다시 첫 대사로 시작하는 마지막 영상은 그저 한 영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면 홍천수가 보내는 새로운 내용의 영상일까. 좀비를 다루는 소설에서 좀비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거나 이 참혹한 좀비 재난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식의 여운을 남기는 것은 자주 보았던 방식이지만, 이 글에서는 방식만 비슷할 뿐 여운은 거의 없는 것에 가까웠다. 어쩌면 이야기 자체가 좀비라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좀비 만들기라는 독특한 발상과 의학적 접근이 주요한 틀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 어쩌면 찝찝함 없이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좀비에 관해서는 소설이나 영화 등 넘쳐나게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별나다고 생각될 정도로 참신한 접근이었음에는 부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부정할 생각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고 놀라운 발상들이 끊임없이 쏟아진 글이었으며, 이를 풀어나감에 속도감을 더하여 단번에 몰입해 읽을 수 있었던 점은 분명한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리뷰라는 글의 특성상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더 긴 분량을 할애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나 새롭고 즐거운 글을 읽을 수 있어 기뻤다. 좀비 소설인데 내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이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들 부담 없이 만나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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