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22회까지 읽고 작성했습니다.
1.
‘짐승’이란 단어에 내포한 의미가 많아서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한 상태로 작품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작품을 읽기 시작한 때는 아직 브릿G에 작품소개 기능이 도입되기 전이어서 더 편견없이 작품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눈을 뜨자마자 당신 옆에 죽어 있는 시체가 있다면?’ 이란 소개를 봤으면 더 긴장을 하면서 봤겠지요.
2.
네, 첫회는 보시는 바와 같이 충격적이지만 요즘 같은 세태에 어쩌면 일어 날 법 한 일로 시작됩니다.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남자 장근덕은 사회에서 배척당하기 쉬운 외모와 그 정도의 수준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느 날과 같이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지만 여느 날과는 다르게 아주 예쁘고 매력적이지만 죽어있는 여인을 마주칩니다. 바로 자기의 자취방에서 말이죠.
모자라다는 평판까지 지니고 있는 장근덕은 이 순간만큼은 머리를 굴립니다. 살기위해 나오는 최후의 생존본능 같은 것이었을까요.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혐오가 뒤섞였지만 어쨌든 알리바이를 증명할 방법도 없으니 시신을 내다 버리자는 나름대로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물론 시신을 그대로 들고 나갈만큼 모자란 사람은 아니라서 시신을 훼손하기로 하고요.
알바에 하루 빠지기까지 하면서 시체를 훼손하는 일에 열중하는 장근덕에게는 반갑지 않은 사실이 있었으니 이 모든 과정을 녹화를 하며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동구와 그의 친구 최준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 여자를 죽였다고 말하는 미셸이란 여인의 부탁을 받고 현장에 나갔다가 우연히 장근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제 이 셋은 합심해서 여자의 시신을 묻기로 합니다.
이 하나의 사건과는 아직까지는 별개로 다른 사건이 다뤄집니다. 도미애라는 여인이 동창인 이진수에게 동생인 도미옥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는 내용입니다. 이진수는 과거 경찰이었으나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재판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고 지금은 백수로 지내는 인물로 한 푼이 급한 상황이라 선뜻 의뢰를 받아들이고 그녀를 위해 일하기 시작합니다.
분량이 상당하다보니 줄거리도 길어지네요. 하지만 읽는 내내 한 번도 길다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연재주기가 좀 더 자주 돌아왔으면 하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연재 초기부터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반해있어서 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작품소개에는
도미애, 이진수, 오동구, 최준, 장근덕.
다섯 인물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라고 되어있는데 아직까지는 최준보다는 미옥이 더 저 자리에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미옥은 지금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클립같은 인물이죠. 최준은 오동구의 친구일 뿐인 존재감인데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려나요?
이제는 이 인물들이 한자리로 모일 때가 언제인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3.
<짐승>은 무엇보다 캐릭터 설정이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어요.
하다못해 일회성 캐릭터인 관리인이나 경비원도 가볍지 않고 기억에 남습니다. 매일 보는 사람을 그대로 베껴온 것 같이 생생히 살아있어요. 그러면서도 설명이 구구절절하지 않고 행동이라던지, 말투, 그을린 피부나 걷어올린 소매를 통해 짐작가능하게 던져주고 있고요. 이런 소소한 정보를 통해 이 인물의 다음 행동도 예측해 볼 수 있어서 몰입도가 높습니다.
그렇지만 등장인물 중 장근덕은 생각보다 모자란 인물은 아닌 것 같아요. 단지 자존감이 낮고 사회성이 부족하고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렇지 의학적으로 봤을 때는 보통 사람보다 약간 부족한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되물으라는 할머니의 충고를 잘 따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장근덕이 아주 모자르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없었어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모자르다.’는 평을 듣고 있긴 하지만 보통은 보고싶은 것만 보고 판단하기 마련이니까요.
사람들이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도 알고 있고, 캠핑을 즐기기도 하죠. 시신을 훼손해야 된다거나 그 방법에 대해서도 나름 구체적이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만약 돈이 많았다면 장근덕은 오동구스럽게 변했을지도 모르겠네요.
4.
이 작품이 군더더기 없는 매끄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입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이, 기름기를 쫙 뺀 것 같은 문장으로 소개하는 소품의 활용도 이 작품의 매력적인 부분이죠.
도미애는 아담한 벤틀리를 타고 왔다. ~ 적당히 더러워진 뒷 범퍼엔 자잘한 흠집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딱히 도미애가 자기 차를 애지중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건 고급 외제차를 재산목록에 집어넣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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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도미애의 가죽 장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윤이 반지르르한 장갑은 구입한지 얼마 안 된 새 제품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구멍나면 버리는 양말처럼 철마다 새 장갑을 사는지도 모른다. 혹은 드레스룸 구석에 짝 잃은 가죽장갑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을지도. 누군가는 하룻밤 술값으로 5백을 긁는다. 누군가는 5백이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부분은 15회에서 발췌했습니다.
도미애의 벤틀리, 도미애의 가죽 장갑은 그저 도미애가 타고 왔을 뿐이고 끼고 왔을 뿐인데 이진수의 시선으로 보는 그녀의 차와 장갑은 이런 의미를 가지죠. 외제차를 재산 목록에도 넣지 않는 사람, 윤이 반지르르한 새 장갑을 사서 끼는 사람. 독자는 이를 통해서 도미애는 부자라는 사실과 이진수는 도미애에게 열등감과 질투를 내비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일차원적으로 도미애는 부자고 이진수는 질투를 느낀다고 하는 것보다 글이 맛있게 느껴집니다. 곱씹을 수록 다른 맛이 나는 것처럼요.
5.
이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뭘로 해야할까요.
‘질투’ 와 ‘결핍’을 놓고 고민해봤는데 고민 끝에 ‘결핍’으로 정해봤습니다.
분명 질투도 강하게 드러나지만 그는 모두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결핍’으로부터 시작되니까요. 특히 사랑에 대한 결핍이라고 생각해요. 많고 많은 사랑의 종류 중 다양하게 어떤 사랑을 부족하게 느끼는 인물들이 모여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각자의 모서리에서 시작된 퍼즐이 결국 중앙으로 모여 그리게 될 이야기를 앞으로도 흥미진진하게 지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