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보자마자 생각난 것은 두가지 입니다.
먼저 첫번째는 미국에서 연구되고 있다던 신체 재생에 관한 내용입니다. 신체 재생이야 워낙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연구되던 분야였지만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기사는 바로 ‘돼지 방광을 이용한 분말을 통해 재생’했다는 내용이었죠.1 신체가 절단되었을 때 접합하는 수술이 까다롭다는 걸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본 기사여서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SF문학의 조상 격으로 불리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죽은 개구리 시체에 전류를 흘려 보냈을 때 다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는 의사 갈바니의 실험에서 유래한 용어 ‘갈바니즘’에서 영향을 받은 이 소설은 내용을 모르더라도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갈망을 느끼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시체들 중 가장 ‘아름다운’ 부위만을 모아 꿰메고 생명을 불어넣었지만 결과물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결국 겁을 먹은 빅터는 도망가게 되고 그때부터 ‘괴물’과 빅터는 지독하게 얽히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든 생각은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각성제를 마시고 마약을 제조해 팔면서까지 연구에 집착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열의를 넘어 광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귀감이 될 일이 맞지만 모두가 떠난 와중에도, 심지어는 연구비가 끊긴 와중에도 집착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대단하다는 생각보다 소름이 돋았으니까요. 결국 그것은 극단적 결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기대하던 결과가 코 앞에 있지만 마약에 눈이 먼 폭력배들 때문에 모든 결과가 한순간에 날아갔으니까요. 사실 이것은 이만 연구를 멈춰야 한다는 신호였을 지도 모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어도 그들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릴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경고를 무시하듯 연구를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결과를 직접 마주하게 되죠.
저는 이들의 욕심이 결국 화를 불러 일으켰다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기술을 무료로 공유한다는 포부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열정이 비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도 처음 ‘괴물’을 만들 때 -약간의 오만함은 있었지만- 생명에 대한 경의와 호기심, 열정이 기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고 ‘괴물’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 북극에서 사망하게 되죠. 이런 경우처럼 이 글의 과학자들도 과도한 열정이 결국 독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겠지만, 결론이 그렇게 났으니까요. 이제 당장 닥친 결과를 치워야하는 것도 그들의 몫일 겁니다. 그것을 잘 치워나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