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음양오행 추리물’에 모자를 벗어주십시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커피가 없는 커피 전문점 (작가: 황성규, 작품정보)
리뷰어: 이두영, 19년 6월, 조회 166

1. 고관절이 아니야!

1877년, 에든버러 대학교 의과대학의 어느 강당에서 강연이 열렸다. 강사의 이름은 조지프 벨. 벨은 환자들을 강단 위에 불러 세우고 학생들더러 이 환자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맞춰보라고 묻는 식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당시 18살이던 어느 학생은, 강연 내내 조지프 벨에게 감탄했다. 벨이 보여준 기행 때문이었다. 벨은 환자를 진찰하기도 전에 단지 환자가 강단에 올라서는 모습만 보고도 환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맞추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강단에 중년의 부인이 올라오자, 벨은 “아랫입술에 작은 궤양이 있고 뺨에 흉터가 있으니, 뺨에 가까이 붙을 정도로 짧은 파이프를 자주 쓰는 흡연자”라고 대번에 알아맞췄다. 한 남자가 다리를 절뚝이며 강단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어느 학생이 “이 환자는 고관절 질환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벨은 “고관절이 아니야! 엉덩이가 아니라 발이 문제일세. 이 환자의 신발에 칼 자국이 있는 걸 보게. 이 환자는 고관절 환자가 아니라, 티눈 환자일세. (그래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거야.)”라고 반박해버리는 식이었다.

단지 환자의 거동만보고 상태를 맞춰버리는 조지프 벨의 모습에, 당시 18살이던 어느 학생은 강한 인상을 받았고, 조지프 벨이 보여준 그 모습에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 소설의 주인공은 조지프 벨이 보여준 놀라운 관찰력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직업은 탐정이었다. 소설가가 된 이 학생의 이름은 아서 코난 도일이며, 그가 조지프 벨의 관찰력을 모티브로 창조한 이 탐정 캐릭터는, 이미 떠올리고 계시겠지만, 당연히 셜록 홈즈이다. 홈즈가 의뢰인 손님이 들어서자마자 척하면 척하고 낱낱이 알아맞추는 모습은 의과대학 교수 조지프 벨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2. 추리와 의학이라는 ‘근대(modern)의 믿음’ — 모든 진실은 밝혀낼 수 있다!

 

추리소설과 의학은 연결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셜록 홈즈의 탄생 비화에 의과대학 교수 조지프 벨이 있었다는 점은 공교롭다. 허나 셜록 홈즈의 사례 뿐 아니라, 의학이라는 학문과 추리물이라는 장르는, 각자의 내적 측면에서도 그리고 역사적인 외부 요인에서도 굉장히 융합되기 용이한 편이다.

우선 내적 측면을 살피면, 추리물은 작은 단서들을 ‘정보’로 수집하고 그 정보들의 ‘연결’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진실—즉 정답‘을 도출하는 과정이요, 의학은 환자의 증상들을 ‘정보’로 수집하고 그 정보들을 ‘연결’시켜 질병의 정체가 무엇인지 ‘질병의 정체—즉 정답‘을 파악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구조상 그 흐름이 같다. 심리학 또는 정신분석학이 개입되는 추리물의 경우, 바로 이 정답 도출의 과정에 의학 지식이라는 요소가 심리/정신의 분야까지 그 폭을 확장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측면은 바로 외부적 맥락으로, 본격적인 추리물의 등장과 현대 의학의 발전 이 두가지 모두 근대라는 시기에 태동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식인들은 종교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이는 지식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성서의 말씀에서 오류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개념에 논박이 가해지면서 과학과 종교의 대립 구도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인간은 이제 세계와 자연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자연세계는 더 이상 ‘창조주가 빚어낸 경외로운 질서’가 아니었다. ‘분석과 검증으로 밝혀내야 할 미지의 법칙들—그러나 인간의 이성적 분석과 검증으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연구의 대상물’로 격하되었다.

질병은 더 이상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 아니라 병균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이를 제거하면 되는 일이요, 과학적인 논리에 입각해서 단서들을 해석하면 모든 미스테리는 해결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인들은 그렇게 믿었다. (물론 양자역학까지 넘어온 과학 그리고 갈수록 새로이 등장하는 질병 등으로 말미암아, 이런 ‘근대의 믿음’이 오늘날에는 상당 부분 바래졌지만.)

한마디로 의학과 추리는 핵심 맥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함께 붙기 용이하다.  ‘모든 진실은 밝혀낼 수 있다!’라는 근대의 믿음과 더불어 탄생했다는 점에서, 이제 막 하나 하나 자연 세계의 질서를 알아가던 서구인들이 느낀 희망적 믿음, 어떠한 난제든 그것이 질병이든 살인사건이든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양자가 결합하기 쉬움은,  ‘서구 유럽의 역사‘가 보여준 흐름 상 결합되기 용이한 것이라고.

그런데, 여기에 동양의 세계관인 음양오행론이 가미된다면?


3. 나는 연재분을 모두 읽지 못했다.

 

MBC 노조 홍보국장 이용마 기자는 2012년 170일에 거친 파업을 이끌다가 결국에는 해고 당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병마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굽히지 않으리라는 다짐의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가 몇 년 전에 발간되었다. 이 책에 실린 추천사 중 손석희 JTBC (당시) 보도부문 사장의 추천사는 다음과 같았다.

“이용마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사람이다. (중략) 나는 그의 초고를 받았지만 아직 읽지 않았다. 읽지 않고 쓰는 것은 나의 비장함이다. 힘내시게, 이용마.” — 손석희 JTBC 보두부문 사장

부끄럽게도 아직 리뷰 대상작 <커피가 없는 커피 전문점>의 현재 연재분을 모두 읽지는 못한 상태이다. 개인적인 시간상의 문제들, 이런저런 핑계야 만들려만 많이 만들 것이다.

허나 아직 연재분을 모두 읽지도 않은 마당에 내가 이 작품을 두고 리뷰라는 형식으로 글을 올려 알림은 무슨 까닭인가—서구 유럽의 근대를 상징하는 두 가지, 의학이라는 학문과 추리물이라는 장르에 음양오행이라는 동아시아의 소재를 자연스럽게 삽입하여, 의학 지식이 가미된 추리물이라는 익숙한 모습과 그 근거 논리가 음양오행이라는 신선한 조합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손석희의 추천사를 살짝 빌려, 이렇게 변명한다

—”나는 연재분을 모두 읽지 못했다. 연재분을 모두 읽지 못하고 리뷰를 쓰는 것은 나의 감탄이다.”


fin. 여러분, 모자를 벗어주십시오.

 

로베르트 슈만이 청중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어느 무명에 불과한 음악가를 청중들에게 소개하는 멘트였다. 청중들에게 과분한 격찬으로 소개 받은 이 음악가, 무명의 남자는, 바로 쇼팽.

슈만이 쇼팽을 소개한, 이 유명한 문장을 감히 빌려오는 것으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여러분, 모자를 벗어주십시오. 여기 ‘음양오행 추리물’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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