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돌렸을 때 당신이 잃어버린 것 – 실명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실명 (작가: 치노르, 작품정보)
리뷰어: 아이버스, 19년 6월, 조회 45

판옵티콘은 제레미 벤담이 제시한 교도소의 모델입니다. 가운데에 감시자들이 외곽에 있는 죄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입니다. 밑에 첨부한 사진을 보시다 시피 감시자는 죄수 전반을 감시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방 안의 죄수들은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심지어 그가 지켜보고 있는 지를 알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미셸 푸코는 이 판옵티콘에 대해 “감시자가 있든 없든 죄수가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고 강제하는 공간”이라며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합니다. 오늘날 근대화란 개념은 우리 사회에 편리함과 이점을 가져다 주었지만 푸코는 이를 우리가 은연중에 외부에 의해 감시 받고 통제 되는 수단으로 해석했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입니다.

판옵티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실명>은 평범한 회사원 유대리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짧은 단편입니다. 제가 앞에서 이 판옵티콘이란 개념을 가져온 건 묘하게 이 유대리의 삶에서 내리쬐는 무언가가 이 판옵티콘을 떠올리게 만든 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대리는 회사원입니다. 작품에서 이 회사의 규모는 나오지 않지만 입사 면접을 통했다는 이야기를 볼때 작은 규모의 회사는 아닙니다. 작품은 차분하게 그의 일상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부분의 전개를 볼 때 유대리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초반부에서 내놓은 사직서를 통해 유대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 지 담담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니까요.

그의 일상은 여느 평범한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그리고 직장에서의 이야기는 사회 생활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공감이 가는 요소로 짜여 있습니다. 관료제적인 위계질서와 거기에 속해있는 구조. 작가님은 이걸 단순화시켜 도형이나 좁은 공간으로 표현합니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첫 번쨰 점은 단순화, 추상화된 요소들입니다. 제가 아까 일상적인 공간의 단순화 됨을 표현했는데 주인공의 일상에서도 이는 두드러집니다. 일상적인 업무 보고서 조차 그에게는 로흐샤흐 검사처럼 알 수 없는 그림 마냥 보이는 주인공에 시선에는 무언가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작품에서도 ‘텅 비었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네, 이쯤 되면 유대리가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유대리는 멍하니 거기에 굴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찾아 뒤지고 헤매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이러한 시도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예를 하나 들면, 직장 동료들 사이에 나올 법한 대화 와중에 주인공은 슬그머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네, 직장동료들이 떠드는 이야기는 그 공간 안에서 허공처럼 날아다니는 말들입니다. 그 사이에서 뭔가 새로운 걸 찾고자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주인공이 상실은 나만 겪은 건 아니지? 호소 하고 싶어하는 느낌이 듭니다. 원래 사람이란 집단 의식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건 두 번째 상실감입니다. 그들은 유 대리의 이런 상실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상실감 너머의 어떤 이유가 있는지 찾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유 대리를 이상하게 보곤 하죠.

상실은 더욱 커지고 눈 앞에는 잃어가는 요소가 점점 많아집니다. 유 대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해 찾아 헤매지만 점점 상실감만 커지고 있죠. 옷장을 뒤지고 버스 안의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게 미스터리하게 다가오진 않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우리도 이미 은연 중에 눈치를 채고 있기 때문이죠. 그저 삶이 힘들고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씩 외면해 왔을 뿐이란 것을.

그렇다면 유대리는 이 상실의 과정에서 본인만의 답을 찾았을까요? 그 부분은 작품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과정에서 느껴지는 은유는 현대인에게 묘하게 찌르는 아픔을 선사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판옵티콘처럼 우리는 무언가에 가리어 상실감에 빠진 채 앞만 보고 있던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명>은 이름 그대로 어두운 곳에서 우리가 시선을 돌렸을 때 우리는 무언가 잃어버리고 있던 건 아닐까요. 잠시 시선을 돌려 두고 오고 외면한 거에 시선을 돌릴 기회가 있는 기회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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