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물 독자(+습작생)로서 본 이 작품의 매력과 아쉬운 점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씨디아이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그린레보, 19년 6월, 조회 154

저는 추리소설을 좋아합니다. 본격 추리소설부터 일상 미스터리, 별 황당한 설정이 판치는 변종들까지 추리물이라고 하면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편입니다.

녹차빙수 님의 <씨디아이>를 읽게 된 것도 추리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씨디아이>는 와 이걸 어떻게;; 싶은 놀라운 점과 좀 아쉽다 싶은 점이 섞여 있는, 복잡한 감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감상을 정리할 겸,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녹차빙수님께 응원이 되면 좋겠다는 심정도 담아서 리뷰를 작성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작품을 읽으신 분만 보길 권합니다.

 

 

우선 서두에서 ‘사람은 모두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화두를 제시하고 시작합니다. 추리물로서의 전개는 그 화두를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이 화두가 다잉 메시지 트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뭐랄까요,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생각나게 하는 장치입니다. 화두의 제시와 이를 증명하는 과정이라는 콘셉트 자체는 무난하게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건과 추리 파트의 전개가 지나치게 단순한 감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우선 아쉬운 게 그 점입니다. 사건과 상황의 제시와 나열로 이루어지다 보니, 소설로서 극화가 덜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수수께끼 자체의 매력과 이를 푸는 과정의 카타르시스가 적었다는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작품의 수수께끼는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학식이라는 소재에 감탄했습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화학을 전공하거나 한 게 아니라, 작품을 위해 따로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소개되는 화학에 대한 정보는 추리소설의 정보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을 만족시켜 줍니다. 초기 상황 장면에서 드러나는 전문용어들(퓸후드, 초자기구, 붕규산유리 등)의 사용은, 비록 문외한의 입장에지만 읽는 데 신뢰감을 줍니다.

추리(다잉메시지의 해석) 과정에서 제시되는 화학 정보들도 무척 좋았습니다. CDI라는 짧은 축약어를 키워드로 이렇게 많은 관련 지식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역량을 느끼게 합니다. 저 같으면 전공도 아닌 전문 분야의 지식을 파고든다는 발상 자체를 못 했을 것 같습니다. 녹차빙수님의 퍼포먼스에는 순수히 감탄했습니다. 반성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세요?!;;; 하고 노하우를 여쭙고 싶을 정도입니다.

정보 엔터테인먼트는 독자가 모를 법한 전문 분야의 노하우와 지식, 환경 등의 정보를 작품에 녹여냄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인식적, 효용적인 만족을 주는 오락의 한 갈래입니다. 어디까지나 화학 문외한의 의견이지만, 저라는 일반 독자에게 정보 엔터테인먼트로서 충분한 만족을 주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작품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다잉 메시지 해석의 구조에서는 추리 독자로서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개의 단순함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로서 치명적인 점이 있다면, 마지막에 제시되는 ‘CDI = 폐를 살펴봐라’라는 해답이, 앞서 제시된 다른 해석들을 제치고 정답이 되어야 할 이유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해서, 본작에서는 다른 해석들도 충분히 ‘해답’이 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시된 가설들이 작품 안에서 논리적으로 충분히 부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아닌 해석에는 이러이러한 난점이 있다, 고로 아니다’라는 가설 부정의 과정은 추리소설에서 꽤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만, 본작에서는 그러한 과정이 빠져 있기에 결국 추리소설로서의 재미가 덜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작품에 관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상입니다.

녹차빙수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었습니다만(다 읽었습니다… 티를 안 내서 죄송합니다…) 워낙 필력이 좋으신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자로서 욕심은 <씨디아이>를 개작해서 버전업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지만… 오지랖이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 많이 써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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