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2부 15화까지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비평적인 내용보다는 전체적인 감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소재가 무엇인가에 따라 읽는 리듬이 달라진다 생각됩니다. 소재가 경쾌하고 가벼우면 아침식사에 커피 한잔 걸치듯 술술 읽히는 바 하면, 무겁고 진중한 내용이면 이걸 며칠 째 곱씹고 며칠 째 읽어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작가 분들이 어떤 내용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곁들여지는 내용은 부지기수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벌레의 식사]는 제 생각엔 후자에 가깝습니다. 진중한 사회 이슈에 무거운 호러의 만남. 뭔가 무겁겠구나 느낌이 오게 됩니다. 그도 그럴 듯 이 작품의 내용은 ‘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계속 흡인력 있는 전개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이 작품에서 지건은 작가가 보여주는 주제에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돈까지 상납을 당하다 수치스러운 동영상 촬영까지 당합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실수로 죽음 문턱까지 가게 됩니다. 사건은 폐가에서 그에게 입힌 정체 불명의 꽃무늬 원피스에서 시작됩니다. 원피스를 입고 난 이후 지건은 사람이 달라지는 묘사를 보여줍니다. 마치 무언가에 빙의되어 뭐가 있구나 하는 떡밥을 던집니다.
다만 제가 글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건 이 작품에 주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지건의 묘사를 왔다갔다 했다는 점입니다. 2부에선 일중의 시점에서는 다시 왕따 피해자의 심정으로 돌아와 주위의 방관과 무시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을 보여주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1부에서 있었던 지건의 독특한 변화와 무언가 있다는 독특한 긴장감이 사라지는 건 아쉬웠습니다. (물론 작중에서 일중이 원피스를 태우면서 일상생활로 돌아간다는 묘사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긴장감이 조금 더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개인 의견)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학교 폭력 피해자의 입장만이 아니라 가해자 양쪽 입장에서 이걸 심리 묘사로 바라본 건 좋습니다. 대개 이 주제를 다룰 때 많은 작품들이 한쪽 측면을 너무 부각하거나 강조하는 면만 보이는 실수를 보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양쪽 입장과 주위 방관자의 입장을 통해 보여주려는 시도는 훌륭합니다. 다만 2부 마지막에서 풀어주는 결말에선 단순히 지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한 줄로 이를 풀어버리니 뭔가 지금까지의 일을 용서 하나로 정의하기에 시원스러움이나 갈등을 풀어주기엔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아마 3부가 연재된다면 더 이 과정을 맵시있게 풀어가며 책벌레와 관련된 일화를 전개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일중입니다. 일중은 2부에서 등장하는 가해자 패거리의 주인공으로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일중’이란 캐릭터의 설정이 독특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라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진 그의 내면과 교실에서 가해자라는 딜레마가 충돌하는 내면의 갈등은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부의 심리묘사는 저는 작품 내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책벌레의 식사]는 극과 극인 두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때로는 이들에게 적개심을 느낄 수도, 감정이입을 할 수있게 심리 묘사가 잘 짜여 있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가는 점은 좋습니다.
저는 다만 1부에서 2부로 넘어오면서 나온 동양적 세계관인 책벌레와 책쾌 이야기가 나온 부분에서, ‘아 내가 생각한 책벌레가 이게 아니네.’란 생각은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녀석이었어, 하는 독특함은 주었습니다. 마치 [신과 함께]같은 신화적인 느낌을 많이 주시려고 작가님께서 많이 의도하셨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1부 초반부의 사이비종교 떡밥이 나오면서 스릴러 느낌도 나오면서 여러 추측이 있기에 머리가 조금 아팠습니다. 앞의 심리 묘사는 치밀했는데 상대적으로 회상이나 일중의 아버지 일화, 담임교사의 대화 정도로만 풀어나가기에 정보를 얻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3부를 통해 작품소개에 언급한 벌레 관리사 이야기가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만들긴 합니다.
[책벌레의 식사]는 우리 사회 주변의 이야기면서 묘한 공포, 인간에 대한 증오와 심리 묘사, 그리고 슬며시 던지는 반전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1부와 2부를 통해 지건과 일중이 펼쳐나가는 폐가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걸 읽다보면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즐거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