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밖에 나오지 않을 좀비와 시체, 음침한 죄악과 혼돈의 서사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좀비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작가: rottenlove, 작품정보)
리뷰어: , 19년 6월, 조회 77

안녕하세요. 저는 전문적이지도 아마추어적이지도 않은 그저 그런 한 명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일단 제가 읽어봤습니다. 전체적으로 흘겨보았을 때 느낌은 ‘혼란스럽다’와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시킬 것인가? 의 부재’가 크게 와닿은 것 같습니다. 작가분께서는 일단 의식의 흐름기법과 뭔가를 숨겨놓고 서서히 퍼져나가는 은유적 방식, 캐릭터 개인의 내면세계에서 외면으로 서서히 퍼져나가는 방식을 쓰신 것 같아요.

상업보다는 순수문학적 관점에서 서술하신 것 같고 개인적 경험과 어떤 부분들이 녹아들어가 서술하신 건지는 제가 깊게 감정이입을 해서 보지 못한 점 양해드립니다. 비판적인 의미로 써달라고 하신 것 같지만 저는 예의를 지키고 싶네요. 흠…

 

그래서 각 회를 분석하여 리뷰를 쓰겠습니다.

먼저 제목입니다.

좀비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인데 첫 시작회인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1) 에서는 초입부터 난데없이 한 캐릭터가 혼잣말을 합니다.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솔직히 왜 이 캐릭터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인지는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것 있지 않나요? 모르는 사람이 자기 철학을 얘기하는데 웬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귀담아 듣지 않는 것. 이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첫 키워드는 ‘조화’이지요? 조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 세계이고 그건 모든 인간이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있습니다.

 

그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이 컴플렉스로 발현될 것이고 캐릭터는 자기를 설명함으로서 자기가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지 보여주려나 보구나. 하다가 갑자기 조화로운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자기 철학을 말하다가 갑자기 교사가 되었다고 하고 그 조화라는 직찹 속에서 만나게 된 학생들을 연구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읽을 즈음에야 ‘유진’이라는 존재를 파악하고 학교라는 생태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캐릭터의 철학적 설명이 소설가분의 세계로 들어오려는 독자들을 쳐낸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철학적 관점은 캐릭터와 친해진 이후에 서서히 풀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첫 회는 이 부분만 순화한다면 독자들에게 읽혀질거라 믿습니다.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2) 에서는 다시 캐릭터가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잠시 언어적인 부분을 짚고 가겠습니다. ‘중복’은 왜 할까요? 어느 때 중복적 묘사나 표현을 해야할까요? 제가 여태까지 봐 온 소설에서는 ‘중복’이 나타나는 시점은 어떤 반전이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시점 혹은 캐릭터가 잊혀질 즈음 다시 나타나는 시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1회에 언급한 첫부분을 2회에서는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명이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소설에서는 설명이 많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표현과 묘사, 시각화를 하여 상대방을 집중시키는 것이 소설입니다. 소설의 기능은 경험의 확장과 카타르시스 혹은 다른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

 

소설은 텍스트로 되어있지만 동시에 시각화를 요구하고 ‘눈’이라는 기관은 자극과 반응을 위해 존재합니다. 아쉽게도 작가분의 글은 설명이 지나치게 깁니다. 혹시 자소서 같은 걸 써보신 적이 있나요? 자소서의 핵심은 바로 나를 소개하는 것. 상대방에게 나를 시각화하며 긍정적이거나 혹은 어떠한 감정들을 치밀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1,2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대체 누구에게 캐릭터를 소개하고 누가 그것에 집중하는지 구체화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인식시켜야 소설은 시작됩니다. 설명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소설의 어느 부분부분을 임팩트 있게 다가갈 것인가 고뇌하고 집중한다면 설명으로만 존재하던 캐릭터들이 뼈대를 갖추고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3) 제 생각에는 이 3화가 첫 시작부로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전히 설명은 길지만 작가 특유의 철학과 묘사, 학생들이 좀비가 된 ‘유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오롯이 담겨있고 학교라는 집단을 설명하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부분들이 이 안에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추상적인 부분들을 걷어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작가분이 쓰신 ‘학생들은 언제나 화나 있었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대화하지 않았고~’ 이 부분들이 바로 추상적인 요소들입니다. 소설을 떠나서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크거나 작게 사건의 중심에 뛰어들어 있습니다.

 

잠을 자고 눈 뜨는 것도 하나의 사건이고 밥을 먹는 것도 하나의 사건입니다.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구요. 허나 그 일상적인 부분들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면 친구와의 관계, 학교의 분위기,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들이 생동감 있는 ‘사건’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니 모두가 알고 있거나 혹은 개인적인 생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추상적인 개념들을 숨겨야합니다.

 

최예란 – 하소연 / 정성태 – 현관 저는 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왜 인물의 이름이 등장하고 부제로 고운점박이유충 등이 써져 있는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날려 읽는 제 스타일의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점으로는 집중하지 않고 그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사건이 주는 답답함과 쾌감, 캐릭터의 감정에 흡수되어 현실을 잠시나마 잊거나 혹은 그 안에서 배우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권하는 회차 제목 부여 방법은 차라리 인물의 이름만 집어넣고 뒤에 나오는 부제는 빼는 게 어떨까요? 그 인물의 관점에서 사건이 진행된다고 느끼도록 하게요. 독자들이 처음 들어와 회차를 보면 이게 좀비 이야기인지 아니면 단편으로 엮여진 제목인지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회차들을 읽어보니 이전 회차들과 같은 방식이고 제가 그에 관해서는 미약하나마 어리석게 충분히 얘기드린 것 같습니다.

 

저는 여태까지 글을 완결내 본 적이 거의 없는 그냥 날아오르지 못한 평범한 한 개인이며 동시에 소설을 가끔 읽는 독자입니다. 제 리뷰는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가 몇 마디한 거라 치부하시고 잊으시길 바라고 앞으로도 본인의 스타일을 연구하여 좋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전체평 요약입니다.

혼란스럽다. 설명은 그만하고 좀비를 보여주는 게 어떨까?

회차별 요약입니다.

작가분이 한 번 자신의 소설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스토리보드를 만들어보시는 게 어떨까?

 

이상이었습니다. 리뷰어인 주제에 제 개인적인 얘기도 좀 하고 그런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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