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마 입니다. ‘나’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들이 내가 눈을 번뜩이자 순간 당황해서 소란을 피울 정도로 노련하고 문제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죠. 경찰들은 ‘나’가 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나’ 역시 굳이 그것을 밝히려 들지 않죠. 영어를 알아 듣긴 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통역사가 붙지만 그는 ‘나’의 말을 순화해서 전달합니다. 그렇게 기계처럼 고개만 끄덕이다, 무미건조하게 면답시간이 끝나자 통역사는 무언가를 속삭입니다.
당신이 한 일에 대해서 긍정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저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그 호의의 저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사형은 언도 받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판결이었습니다. ‘나’는 순순히 판결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자신을 나비가 일으킬 태풍을 막기 위해 나비를 죽이러 온 사람이라 명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가 왜 살인을 저지르고 순순히 잡혔는지 궁금해할 뿐입니다. 문이 열리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초과되었습니다.
‘나비’는 굉장히 무난한 엽편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사건은 살인마 ‘나’가 잡힌 후 사형을 언도받는 것이 함축된 것이며 이러한 과정들이 압축되어 보여집니다. 살인마를 다루는 만큼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빠른 전개로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엽편은 특이하게도, 판타지 라는 양념을 약간 첨가했습니다. ‘나’의 방백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마치 주인공이 미래의 어떤 일을 겪고 그 상황을 고치기 위해 타임워프나 모종의 상황을 겪은 후 과거로 왔다는 설정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변호사의 속삭임은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동지’를 만난 것 같은 대사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나’에 대한 묘사는 한정적이며 변호사의 언급은 짧고 글 역시 빠른 전개로 진행되기에 더 이상의 정보 역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상상력을 펼쳐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주인공은 정신 분열을 앓고 있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변호사는 그에게 답지 않게 동정을 느낀 것 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나’ 가 살인한 사람이 경찰과 유착한 최악의 빌런이고 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불리한 발언을 해야 하는 가련한 신세일 수도 있죠. 혹은 글에 나온 그대로 시간 여행을 한 사람과 먼저 시간 여행을 했던 사람일 지도 모릅니다. 정확한 정답은 작가가 아닌 이상 알 수 없습니다. 대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후에 펼쳐질 이야기, 혹은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