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에서 피어난 빨간 ‘희망’ 혹은 ‘절망’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에덴 동산 (The garden of Eden) (작가: 원시림, 작품정보)
리뷰어: 잭와일드, 19년 5월, 조회 69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매트릭스는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를 의미하며, 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오에게 두 가지 형태의 알약을 건넨다. 파란 알약은 비록 허구로 이루어진 세계이지만 그러한 현실에 안주하며 살 수 있는 약이고, 빨간 알약은 참혹하고 고통스럽지만 거짓을 꿰뚫고 불편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약이다. 네오는 단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 빨간 알약을 삼키고 진실을 택한다.

 

 

<에덴동산 (The garden of Eden)>을 읽으며 나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을 떠올렸다. 문명의 발전과 산업화는 인류에게 풍족한 삶을 가져다주었지만, 자본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를 능가하게 되면서 개인은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되었다. 눈부신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존재했고, 삶의 고통이 가중될수록 인간은 낙원과 이상향을 열망해왔다. 인간의 낙원에 대한 갈망은 삶의 고통의 반증이다. 낙원에 대한 열망은 현실의 삶의 고통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상향에 대한 갈망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서양에 ‘에덴동산’, ‘유토피아’, 아르카디아’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태평성세의 상징 ‘요순시대’, 홍길동의 ‘율도국’, ‘무릉도원’이 있었다.

 

본작 <에덴동산>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유토피아 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울 것이다. 주인공은 깨어나자 마자 빨간 알약 없이도 디스토피아적인 상황을 인식했다. 하얗고 굉장히 높은, 낯선 천장, 만삭인 몸, 금속성의 높은 침대, 부자연스러운 주변 인물 등은 주인공에게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불신과 불안,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주어진 세계에 융화되지 못한 주인공이 각성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출구를 찾다가 만난 나이 지긋한 남자와의 대화였다.

 

“난 이곳의 관리자입니다. 당신같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돕지요.”

“당신들의 종교적 신화에 그런 내용이 있지요. 남자는 일을 하고 여자는 출산을 할 것이라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은 기록 말입니다.”

 

이 세계의 관리자라고 말하는 남자는 성경의 창세기를 언급하며, 주인공은 인간에게 삶과 영혼을 주는 여신이며, 이곳에 많은 여신이 자기의 창조 에너지를 가지고 수태하여 생을 낳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 일련의 세계는 정당한 것이며, 가끔 꿈속 자아의 삶에 깊이 동화되어 깨어난 후에도 그 사람인 것과 같이 착각하는 주인공과 같은 여신이 있다며 주인공을 달랜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남자는 두 가지 선택지를 부여한다. 긴 복도의 끝에 위치한 왼쪽 방은 명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해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방이다. 오른쪽 방은 휴식을 위한 방이다. 영혼을 출산한 여신들이 쉬거나 놀면서 재충전하고, 다음 여정을 떠나기 전까지 시간을 보내는 방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메트릭스의 설계자 아키텍트 (The Architect)와 만났을 때 등장한 수많은 모니터들은 네오의 선택에 따라 미래에 실현되는 수많은 평행현실을 나타낸다. 우리의 의식세계에서 현실은 고정된 실체처럼 인식되지만, 현실은 수많은 평행현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평행현실 중 하나를 실현시키는 것은 나의 행위, 즉 “선택”이다.

 

<에덴 동산>의 주인공은 두 가지 선택지 모두를 거부한 제3의 선택을 한다. 그것은 여신으로서의 의무를 버리고,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남자는 ‘사과’를 통해 주인공에게 경고를 한다. 주인공은 남자가 건넨 사과를 문 밖으로 던졌고, 사과는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문밖으로 나가면 존재는 소멸되는 것일까? 세계를 벗어난 주인공은 악몽을 꾼 듯한 상태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디스토피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꿈을 꾼 것이라는 것에 안도하는 주인공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침대 위에 있을 리가 없는, 그리고 있어서도 안될, 작고 빨간 사과’였다.

 

빨간 사과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연히라도 있을 수가 없는 사과가 침대 위에 놓여있었다는 것은 주인공의 경험이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과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는 어떠한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유토피아는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적 속성을 내포하기 마련이고, 디스토피아도 어떤 측면에서는 유토피아적 면모를 보일 수 있다. 빨간 사과는 세계에 안주하는 순간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로 변할 수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경고의 의미 아닐까? (어떻게 보면 빨간 사과는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과 같은 의미도 가진다.)

 

전체적으로 글의 긴장감이 유지된 상태에서 전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앞서 언급한 ‘사과’에 의미를 부여한 부분이었다. 다소 아쉬웠던 부분은 주인공의 세계에 대해 자각을 하는 설정이었다. 주인공이 깨어난 직후에는 유토피아에 있는 듯한 안락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끼다가, 남자의 등장 등 어떤 특정 계기로 인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되는 전개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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