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이 되지 못한 그는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서울의 갈라테이아들 (작가: 선작21,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9년 5월, 조회 119

※스포 있습니다.

 

 

 

상당히 섬세하게, 마치 찰흙 소조처럼 차분히 덧발라가듯 정성스레 만들어진 글이다. 밖에서 안으로 깎아내는 조각과는 정반대로 쌓아 올려야 하는 작업이 소설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른다.

갈라테이아는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되살아난 조각의 이름이다. 여성을 싫어해서 조각을 사랑했으니 피그말리온의 첫사랑이기도 하다. 예술가에 비유하자면 작품에 불멸의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조각가가 바로 피그말리온이 된다. 주인공도 피그말리온처럼 갈라테이아를 조각하지만 수단은 창조가 아닌 생명의 갈취이다.

무명 조각가인 주인공이 집착하는 아름다움의 표상은 다름 아닌 첫사랑이다. 그리고 그 첫사랑이 바로 첫 살인이자 살인에 대한 기호가 내면에 처음 싹튼 계기임이 넌지시 암시되는데 그 암시가 구체적 사실로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이 실로 영화를 보듯 생생히 그려진다.

여기서 반복, 교차하는 행위가 바로 머리 자르기와 조각이다. 둘 다 뭔가를 훼손하는 파괴 행위이건만 모두 예술로 승화되는 작업이란 점이 살인과 연결되어 자못 의미심장해진다. 사각사각 부드럽게 잘리는 머리카락과 이름 모를 여대생의 첫 실연. 그리고 주인공의 예술에 대한 고뇌와 거칠게 파내어지는 조각 작업. 이 모두가 예술 소재가 살인으로 조각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이 흐름에서 독자는 살인자의 심상에 순간적이나마 공감을 일으키게 된다. 정성스레 설계된 입체적인 반복 표현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의 내용은 결론부터 말해 피그말리온이 되지 못한 조각가가 결국 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주인공처럼 되어버린다는 결말이다. 향수의 그르누이와 다른 점이라면 더 출중한 재능을 가진 라이벌을 친구로 뒀단 점이다. 심지어 둘의 우정은 꽤 건강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주인공이 아르바이트치곤 너무 능숙했던 헤어 디자이너에 만족했다면 조금은 다른 결론이 되었을까? 머리를 다듬을 때의 진지함과 예술에 대해 엄격하고 순수하기까지 한 태도 때문에 살인을 통해서 완성된 작품이 더 서글프게 보이기도 한다. 왜 순간의 영감은 그리 쉽게도 바스러지고 사라지는가. 왜 신은 피그말리온의 재능을 주인공이 아닌 친구에게 줬는가. 죽음을 통해 완성된 갈라테이아가 기어이 평단에 의해 예술혼을 인정받아 일종의 생명을 얻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프롤로그에 나왔던 머리 마네킹이 결말에 재등장하여 주인공의 미학이 최고조를 이룰 때 그가 집착한 예술이 결국은 살인 쾌락의 동의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주인공은 친구에 대한 열등감으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데드마스크를 위해 저질렀으니 이는 살인 쾌락과 예술에의 열정이 분리될 수 없는 살인마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시간 부족은 그저 도화선이 짧았다는 사연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스릴러에서는 살인 그 자체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주인공이 추구하는 미학에 살인이 필연임을 독자가 받아들였단 사실 그 자체가 바로 공포가 된다.

미(美)에 대한 탐닉이 살인 기호로 이어지려면. 혹은 살인 기호가 예술에 대한 집착으로 합리화되려면 그 살인자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려내어야 소설적 공감을 얻게 된다. 그 쉽지 않은 여정을 근사하게 마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단편은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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