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우보이 비밥>을 좋아하고요, 비슷한 이유에서 <은혼>도 좋아합니다. 왕년에 끗발 날리다가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은둔고수가 여차저차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본업에 착수하는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진영’은 제게 있어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학계에 이름을 날린 젊은 교수가 모든 것을 마다하고 은퇴해 강원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는 설정은 그런 낭만적인(?) 인물형을 현대 한국이라는 낭만 없는 배경 속에 그럴싸하게 녹여낸 설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원’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그는 피흘리는 고라니(!)와 함께 밤길에 히치하이킹을 하고서는, 마치 ‘내가 귀신이다!’라는 것처럼 히치하이커 귀신 이야기를 늘어놓는데요. 이렇게 은근슬쩍 현재 상황을 연상시키는 일화를 통해 공포심을 배가시키는 연출은 공포물의 유명한 클리셰죠.
그러나 <낯선 손님>은 클리셰를 이용해 먹기에만 급급한 소설은 아닙니다. 소설은 클리셰를 적당히 차용하면서도 그것을 소설이 선택한 배경에 걸맞게 재구성하고, 무엇보다 종국에는 그것을 비틀어버림으로써 나름의 반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재원은 귀신이 아니라 단지 고라니가 불쌍했던 의사 출신 법의학 전공자였을 뿐입니다.
진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진영은 ‘학계를 떠난 이름난 교수’이기도 하면서,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는 효녀’이기도 하면서, ‘펜션에서 생활하느라 마을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외부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히 병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긴밀한 연관을 가지면서 ‘진영’이라는 캐릭터를 직조해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클리셰와 반(反)클리셰의 변증법을 통해 오리지널리티를 생성해내면서, 소설은 현실감 있는 무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