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발랄 ‘funny한 호러’ :D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개, 아니면 애 (작가: 유기농볼셰비키, 작품정보)
리뷰어: 이두영, 19년 5월, 조회 202

1. 영화 <티스(Teeth)>(2007)의 기억

군대 시절을 좋게 말하자면, ‘여러 인간 군상을 압축적으로 접한 시절’이었다.

조폭생활 하다가 뒤늦게 입대한 사람,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 따위 포기하고 운동 선수로 전향했지만 메달 한번 못 따다가 나이가 되어 들어온 사람, 열악한 가정에서 자격증도 없이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 정비공 노릇을 하다가 이제 제법 돈다발을 만지며 유흥을 탐닉하려던 찰나에 군대영장이 나와서 입대한 사람, 서울 강남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딱히 모난 면도 튀는 면도 없지만 성적이 안되어 지방대학교를 다니다가 입대한 사람, 아버지한테 나이트클럽을 물려받고 스무살부터 사장님으로 일하다가 더 이상 영장을 미룰 수 없어서 입대한 사람, 어린 시절 친척 누나에게 좋지 않은 경험을 당하고 스무살도 되기 전에 나이트클럽 삐끼 노릇을 하다가 뒤늦게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나에게 이것저것 공부를 물어보던 사람 등등.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나 하나 뿐이었다. 연세대를 졸업한 소대장까지 쳐줘야, 그나마 두 명.

슬슬 군대밥이 익숙해진 일병 때, 하루는 생활관에서 선후임 할거 없이 TV를 보고 있는데, 어느 영화 채널에서 ‘오늘밤 <티스> 최초 상영! 그녀를 사랑하면 잘린다?’라고, 화면 하단에 띠지마냥 예고를 달아놨다.

“야, 티스가 뭐고?” 어느 병장이 딱히 누구한테라고 할 거 없이 툭 말을 던졌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렇다, 보통 한개 소대 안에서 저게 이빨이라는 뜻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게 엄연한 우리네 현실이다.

내가 슬그머니 말했다. “이빨이란 뜻입니다.”

“영화 제목이 이빨이라고? 왜 이빨이지?” 또다시 침묵. 다들 고개만 갸우뚱.

이번에도 내가 말했다. “저거, 거기에 이빨이 달렸다는 뜻 아닙니까? ‘그녀를 사랑하면 잘린다’라고 써있잖습니까.”

“으에에에!?!?” “어!!!” “오와 씨X!!!” “어 대박!!!”(동시다발적 충격과 공포의 탄성들)

내 말 한마디는 삽시간에 중대 전체로 퍼졌고(…….) 그날 저녁 모든 중대원들은 이 영화가 정말 그러할 것인가 하고 TV 앞에 앉아 모두들 영화 <티스>를 시청하였다. 영화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진짜 내 말대로 남자들이 넣었다가 진짜로 짤렸다는 사실 뿐(……)

그러나 그보다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가 끝난 뒤 다들 이렇다할 말은 하지 않지만 표정이며 공기며 뭔가 찝찝한 기분에 잠겼더라는, 미묘한 분위기였다. 잠자리에 들면서, 이불을 끌어올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 ‘프로이트가 말한 거세 공포가 이런 건가…?’

전역 후 몇년 뒤 어느 날,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나 검색했다. 이 영화의 장르는 “호러/코미디”였다. 영화를 재밌게 봤다는 반응이 제법 있었는데, 이 영화에 알 수 없는 미묘함만 느낀 나로서는 알듯말듯하였다.

또다시 제법 세월이 흐른 지금, <개, 아내면 애>를 읽고 영화 <티스>가 떠올랐다. 그래서 코미디 호러구나! 라고 깨달으면서.


2. 남자는 원래 이래 = 여자는 원래 저래

검색을 했지만 찾지 못하였는데, 어느 남자아이 육아교육서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직접 읽진 않았고, 책소개와 목차 그리고 일부 내용 소개만 접했다.) 남자아이는 욕구를 통제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며, 그렇지 못한 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낼 경우 성인이 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며, 따라서 남자아이는 소아기 때부터 소변 등의 배출욕을 인위적으로 억제해야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혹시나 저 이야기가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는 분들이 계실까봐 노파심에 말씀드린다. 저 말을 한 마디로 요약할 경우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 소리는 여자는 원래 저래라는 소리와 같다. ‘남자아이=특정 속성’이라는 접근은 ‘여자아이=다른 특정 속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을, 형태만 달리했을 뿐, 곧이곧대로 답습하는 접근법이다.

‘여자의 대화는 정서적인 동의와 감정이 중요해요’라는 이야기는 일견 따뜻하게 들리지만 ‘남자는 안 그래요’라는 말을 내포하는 셈이고, ‘여성의 경험은 분위기와 정서, 감정이 중요해요’라는 말은 ‘남자들은 덜 그래요, 즉 남자들은 원래 육체적인 본능이 먼저에요’라는 말을 내포하는 셈이다.

저 육아교육서에 ‘남자아이’라는 단어를 ‘아이’라는 단어로 치환해보자. ‘아이는 욕구를 통제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하며, 그렇지 못한 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낼 경우 성인이 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당연한 소리다. ‘따라서 아이는 소아기 때부터 소변 등의 배출욕을 인위적으로 억제해야한다’, 애한테 트라우마주기 딱이다. 작품에 쓰인 표현을 빌리자면, 개소리다.

개소리에는 성별과 연령이 따로 있지 않다.

‘남자는 개 아니면 애’라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르신이든, 젊은 친구이든, 목격하는 순간마다 일단 한숨부터 나오려는 것을 조절한다. 그리고 표현만 다를 뿐, 사실상 성별 이분법으로 말미암은 발언/발화를-정작 그 자신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인지하지 못한채-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한치의 악의 없는 표정으로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에 슬그머니 ‘그냥 확 총으로 쏴버려…’라는 우스운 상상도 해보았다.

<개, 아니면 애>는 그 우스운 상상으로 속 시원히 한 방 날려주시는 작품이다. 머릿속에 막연히 부유하던 생각을 누군가가 글이라는 형태로 완성시켜 보여주었을 때, 그것을 읽음으로써 느끼는 만족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혹시 나도 개 아니면 애…?’라는 자기의심에 후덜덜 하는 한편, 작가의 코멘트로 집필 동기 및 집필의 원동력을 새삼 살피면서 ‘시원하네!’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3. “카프카는 원래 Funny하다.”

김영하가 외국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의 소설은 funny한 버전의 카프카 같다.”

그러자 김영하는 이렇게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카프카의 작품 자체가 이미 funny하기 때문이다.”

김영하 본인이 보기에는 <변신>이나 <성>을 비롯한 카프카의 소설 모두가 애초부터 funny한 이야기, 라는 말이었다.

‘그레고리 잠자의 변신은, 현대 사회에 넘어오면서 소외되어버린 인간 개인의 모습을 어쩌구…’하는 순간 이야기는 무거워진다.

소외된 인간의 신세가 벌레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서글프다. 그러나, 소외된 인간이 진짜로 벌레가 되었더라고 말하는 순간, ‘시니컬하게 웃기는’ 이야기가 탄생한다. 김영하의 눈은 이 점을 포착했다.

개, 아니면 애 뿐인 남자의 세상은 애석하다. 필연적으로 개가 되든가 인위적으로 애에 머물러야 하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안쓰럽다. 그러나 진짜로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을 만들자 앞서 말했듯 ‘시니컬하게 웃기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물론 진짜로 남자가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은, 상상하면 끔찍하다. 진짜로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끔찍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벌레가 되어버린 이야기에 유머를 느낀다고해서 벌레가 되어버리는 세상을 바라는 게 아니듯, 개 아니면 애 뿐인 상황을 재미있게 감상했다고 하여 우리가 정말로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벌레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벌레가 되어버리는 이야기가 나오듯, 우리는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이 도래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의 이야기에 웃음을 짓는다.

벌레가 되는 세상이 호러이듯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은 호러이며,

진짜로 벌레가 된 세상을 그려냄이 funny함과 마찬가지로

진짜로 개 아니면 애 뿐인 세상 또한 funny하게 즐길 수 있다.

이제 긴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하자.

<개, 아니면 애>는 유쾌발랄 ‘funny한 호러’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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