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치즈라는 게 일본에서 들여 온 거거든요 감상

대상작품: 중세 치즈요리 사업 (작가: 도래솔래, 작품정보)
리뷰어: 유이남, 19년 4월, 조회 63

이 리뷰는 소설 속에 감춰진 대단한 참뜻 같은 걸 밝혀내기 위한 리뷰가 아닙니다. 저도 그런 건 모르겠어요. 그냥 소설의 단락단락마다 연상되는 단상들을 늘어 놓을 생각입니다. 신기한 건,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작품들도 결국은 현실과 호흡하기 마련이라는 점입니다.

 

1.

먼지가 오르고 기름이 튀며 매연을 발악처럼 피워 내는 광장은 불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광장을 시 차원에서 공동 부엌으로 삼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 광경만 봐도 화재의 씨앗들이 조각나서 나무로 된 각지의 부엌으로 돌아갔을 적의 위험이 짐작가지 않습니까? 공동부엌 정책 덕에 도시 화재가 크게 줄었답니다.

지금은 좀 덜한 것 같은데, 한동안 매스미디어에서 쿡방과 먹방이 유행이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백종원 씨는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바쁘게 지내셨죠. 범람하는 음식 방송들은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일련의 과정들을 우리 사회 공동의 경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경험들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말이 쿡방/먹방이지, 방송마다 추구하는 바가 천차만별이었으니 말입니다. 예를 들면 전문성과 세련됨을 강조하는 셰프 군단의 쿡방이 있었고요. 백종원 씨를 필두로 한 대중친화적 쿡방이 있었고요. 먹방은 좀 더 다양했습니다. 정말 일상적인 모습의 먹방이 있었는가 하면, 밴쯔나 키노시타 유우카처럼 가히 전문적이라 할 수 있는 먹방이 있었고요. 일부 인터넷 방송에서의 자극적인 먹방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아무리 사회의 파편화가 진행되고, ‘혼밥’이 어쩌고저쩌고 하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은 공동의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면 혼자서 밥을 만들고 먹는 것 같지만(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밥은 같이 먹는 것’이라는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혼밥을 할 때 핸드폰을 가만 두던가요? 꼭 먹방을 틀어 놓진 않더라도, 뭔가 틀어두게 되죠. 꼭 핸드폰이 아니더라도 TV라던가, 라디오라던가, 하다 못해 책이라도 펼쳐 놓고 먹곤 합니다. 우리 중 진정한 혼밥을 하는 사람, 밥을 먹는 동안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하고 오로지 먹는 행위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2.

“나하고 사업을 하지 않겠는가?(…)이 놀라운 음식을 기독교 세계에 널리 알리도록 하세. 자네 또한 명성과 부를 원하겠지?”

“그냥 혼자 먹으려고 한 건데요.”

웃음이 터져나올 대목입니다. 혼자 먹으려고 했다는 시민의 말에, 그리고 못마땅한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백작은 시민의 요리를 사업화합니다. 그게 진짜 “결의”일지 아닐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여러분은 치즈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하는 편입니다. 피자치즈를 올린 닭갈비나 오븐스파게티는 길티플레저의 대명사죠. 예전에는 ‘자극적인 요리’라고 하면 맵고 짠 요리를 뜻했던 적이 있던 것 같은데, 요즘엔 치즈를 듬뿍 넣은 요리도 ‘자극적인 요리’라고 부르더라고요. 치즈의 양과 자극성이 비례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용암처럼 줄줄 흐르는 치즈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건 일종의 ‘약속’이 되어버렸죠. 그러다보니 요즘은 가게끼리 치즈의 양으로 대결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치즈를 내놓는 집이 승자가 되는 대결 말입니다.

시민이 만들고자 했던 요리는 뭘까요. “아주 진한 치즈 요리”인지 “아주 아주 진한 치즈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혼자 먹으려고 한” 요리라는 점은 알겠네요. 이 시민에게 자신의 치즈 요리는 아주 개인적인 일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외부의 간섭을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확신이 듭니다.

반면 레지아노 백작은 이 음식을 “기독교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어 하네요. 그는 자신의 자본과 권력을 이용하여 시민의 개인적인 치즈 요리를 사회 공동의 경험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시민의 요리를 “아주 아주 아주 진한 치즈 요리”라고 부르는 것도 레지아노 백작입니다. 요리의 자극성(“아주 아주 아주”)이 이젠 요리의 정체성(진한 치즈 요리)과 맞먹으려 듭니다.

 

3.

마침내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나서야겠다고 시민이 결심한 그 날, 레지아노 백작과 백작부인은 크게 다퉜다고 해요. 값비싼 도자기 잔, 은식기, 애완용 앵무새가 날아다녔지만 가장 많이 날아다니고 또 파멸적인 위력을 발휘한 것은 녹은 치즈였죠.

그러나 여러분, 음식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공동 경험이 아무리 자극성을 쫓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결국 음식의 본래적인 즐거움에 앞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게 뭐냐구요? 먹고 싶은 걸 먹는 거죠. 어느 날 정말 담백하고 상큼한 요거트가 먹고 싶어졌는데, 그 위에마저도 치즈가 줄줄 흐르고 있으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우리는 치즈를 사랑하면서도, 치즈가 없는 음식을 사랑할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정말 치즈를 사랑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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