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드러지는 장점, 특징
읽으며 느낀 건, 작가가 가장 내세우려한 장점은 ‘스토리’나 ‘인물들의 감정’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그보다는 작품에서 내세우는 ‘이미지’가 더 인상에 남았다. 특히 ‘문’의 이미지… 가끔 어떤 작품들은 ‘굉장히 익숙한 요소’를 ‘굉장히 낯선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예를 들면 ‘갑각 나비’의 「왼손」처럼), 이 작품도 그렇다. ‘문’.. 창문이나 성문, 문턱, 문지방, 등용문..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그러고 ‘타다 만 문’에서도) ‘문’의 ‘이미지’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작품의 장점, 나아가서 작가의 최대 장점은 ‘이런 요소’, 즉 ‘이미지’이지 않을까 싶다.
선택한 장르에 맞는 글인지, 장르성은 어느정도 담겨있는지, 가장 두드러지는 아쉬운 점
이 세 가지는 한 번에 다룰 수 있을 듯하다.
우선 이 작품의 장르는 ‘호러’와 ‘로우 판타지’이다.
호러부터 시작해보자면, 이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느껴왔던 의문과 결부되는 부분이다.
‘호러 소설’이 설 자리가 있는가?
왜 이런 의문을 느꼈냐면 한국 장르소설계에서 호러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협소하다거나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일단 무엇보다 ‘호러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로 무서웠던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건 내 성정이 담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호러 영화를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놀라는 축에 속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무서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호러’때문에 무서웠냐고 하면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를테면 ‘살인마와의 추격전 장면’이 무서웠다면, 이건 호러 소설로서 무서웠던 걸까? 저건 호러라기 보다는 스릴러에 가깝지 않나? 두 장르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건 호러가 아니라 스릴러잖아’, 라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호러가 설 자리가 없을 지도.
어쨌든 그럼에도 호러 소설, 호러 영화를 봤을 때 느끼는 ‘공포’라는 감정을 좀 더 엄밀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호러 소설이 ‘호러’ 소설이려면 ‘공포’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테면, ‘조용한 가운데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와서’ 관객이 ‘깜짝 놀라는’ 것은, 호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기법이다. 그런데 이때 ‘깜짝 놀라는’ 것은 ‘공포’일까? 그러나 여러 작품에서 쓰이는 모든 종류의 ‘반전’을 모두 ‘공포’로 정의하는 건 한 눈에 보기에도 폭거다.
비슷한 예시로, 으스스 ‘소름이 돋는’ 경우가 있다. 그럼 ‘소름’은 ‘공포’일까? 소름이 반드시 공포인 건 아니다.
물론 두 요소는 ‘호러를 보는 이유’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저걸 ‘호러’라고 보는 건 잘못된 분류라고 생각한다.
이제 가장 두드러지는 아쉬운 점을 말해 보자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자 ‘선택한 장르에 맞는 글인지, 장르성은 어느정도 담겨있는지’ 이 두 질문에 대한 느낀 점은, 바로 ‘장르(호러)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호러 소설의 목적이 ‘독자에게 공포를 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독자가 무섭게 느끼지 않았다고 그 호러 소설이 실패한 것도 아니고, 무섭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재밌을 수도 있다)그리고 나아가서 왜 호러성이 아쉬운지, 왜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무섭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면 ‘로우 판타지’라는 장르까지 포함해 ‘소설의 구조’ 때문이다.
여기까지 길게 적었지만, 사실 ‘호러’에 대한 얘기를 빼면 별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아쉬운 점은, 우선 초반부분이 너무 긴 것 같다는 것이다.
읽고 나서 든 생각으론(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이 작품은 ‘8화부터 시작해도 될 것 같다’. 어차피 1화에서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8화까지 읽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면 본격적으로 재밌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정보들을 풀어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0~7화가 재미없었던 건 아닌데, 돌이켜보면 (물론 몇몇 정보들이 있긴 하지만)그다지 뒷부분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작법서만 봐도 스릴러를 쓰려면 첫 장면부터 눈을 사로잡으라느니 본론을 드러내라는 류의 말을 하는데 0~7화까지 203매(단편소설 두세 작품 분량이다)는 그러기에는 분량에 비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앞서서 ‘소설의 구조’를 꼽았던 대로, 중반부와 후반부도 뭐랄까, 좀 미묘하다.
에전에 들은 얘기 중에, 이질적인 장르를 섞는 건 두 개까지만 허용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를테면 마법사(판타지)가 무림으로(무협) 차원이동하는 건 괜찮지만, +외계인(SF)의 습격을 받는다는 스토리로 전개하는 건 안 된다는 것이다(에피소드물은 제외).
이 작품은 초반->중반의 흐름은 괜찮지만 ‘초반, 중반, 후반’ 이 세 부분이, ‘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크게 시너지는 일으키지 않는’ 정도로 어딘가 따로 논다. 용두사미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용의 머리, 주작의 몸, 백호의 꼬리 뭐 이런 느낌이다. 어쨌든 이 부분이 제일 아쉬웠던 점이다.
정리하자면,
선택한 장르에 맞는 글인지, 장르성은 어느정도 담겨있는지
->호러 소설의 목적이 독자로 하여금 무섭다고 느끼게 하는 거라면, 그 부분은 아쉽다. 그 이유는 초중후반의 흐름이 따로 놀기 때문=가장 두드러지는 아쉬운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