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이 여인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느낌입니까?”
Synarak님이 제목 앞에 글의 장르에 대해 적어 놓았음에도, ‘무협’이라는 글귀만 크게 들어왔을 뿐 GL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책을 읽었다. 그래서 여인이 여인을 사랑하는 무협 로맨스에 자꾸만 ‘그’를 지칭하는 2인칭에 여인이 아닌 남정네를 데려오곤 했다. 몇 번을 그렇게 혼돈 속에 읽다가 인물들의 사랑이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무협지에 나올만한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깊게 그려진 이야기는 사랑이었다. 남녀간의 사랑만 뜨거울 수 있나 싶게 명씨세가의 영애인 명시하와 자신의 몸을 돌 볼 수 밖에 없는 낭인 진아랑의 사랑이야기였다. 워낙 격차가 있다보니 두 사람의 화살표는 같은 듯 하면서도 빗겨 나간다.
아랑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시하는 다르다. 사회적인 위치, 평판, 외모, 외모는 물론 인생까지 전부 다. 시하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같이 장점뿐이었지만 아랑의 인생은 단점으로 얼룩졌다. 그리고 시하는 비겁하지 않았다. 아랑은 비겁하고 나약했다. 가족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와중에 홀로 살아남았을 만큼. 그러니 시하가 아랑을 좋아할 리 없다. 아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화살이 정중앙을 맞지 않고 비껴나가는 이유다. 나를 둘러싼 껍질에 대해 아랑은 시하에게 말하지 않는다. 시하가 다가서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지목하고 시하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가시를 촘촘히 세워둔다. 어떤 사랑이건 자신의 심장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내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다가가기 힘들다. 처음에는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생경하게 느껴졌으나 무협지 속의 인물들이 하나 둘 그려졌다.
초반에는 설명을 할 때 ‘그녀’에 대한 단어가 반복적으로 많이 들어가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한 문단에서도 여러번 그녀, 그녀 혹은 ‘그’에 대한 반복이 계속된다. 그러다 서서히 이야기가 익숙해질 때쯤 아랑과 시하의 사랑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2018, 잔)을 원작으로 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폭발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던 덕분인지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2018, 문학동네)를 비롯해 꾸준히 절판과 출간 사이를 오가는 크리스포터 이셔우드의 <싱글 맨>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원작인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2006, 열린책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 Synarak님의 작품 역시 퀴어문학의 줄기를 이어 나간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이 다소 높은 수위를 자랑한 책들이라면 <붉은 밤에 피는 백합>은 두 사람의 순정한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남녀가 아닌 사랑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Synarak님의 글을 읽다보니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에 익숙해져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에는 무지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붉은 밤에 피는 백합>은 편견을 아우르는 무협 로맨스로 짝사랑의 화살에서 두 사람의 마음이 합쳐지기까지의 과정을 녹녹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어떤 사랑이든 나를 전부 열어 보인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