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바이벌>을 읽으면서 또 인간성에 관한 SF가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기억과 복사는 SF에서는 드물지 않은 설정입니다. 철학적인 문제를 논할 수 있으면서 여러 장르에 넣기 좋으니까요. 소재를 차용한 작품은 수 십, 수 백 작품이 넘어갑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면 작품은 더더욱 늘어납니다. 그렇기에 저는 <리바이벌>은 기억과 육체, 진정한 사랑과 정체성 등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이라 생각했습니다. 흥미롭지만 진부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 생각이 깨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인간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빠르게 넘어갑니다. 그보다는 레이싱과 총격전이 작품 가득히 채워집니다. 그 소재가 작 중에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기억과 복사는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리바이벌>의 주제는 ‘선택’입니다. 작품은 선택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선택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변하는지 보여줍니다. 기억과 복사라는 소재는 마치 어떤 선택을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세상에 영향을 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사마란의 가족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주인공 사마란과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복제인간 정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게 어떤 각오와 어떤 감정 속에서 내린 선택이든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란과 정호는 이미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요.
반면에 기업은 방식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리바이벌>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기업이 란과 정호을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정호는 AL사로 가지 않겠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T.C사에 그대로 잡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AL사는 지원보다는 그저 정호에게 돌아오라고 다그칠 뿐이었습니다. 입장상 AL사는 T.C사보다 더욱 유리한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비록 그 목적이 다른 데 있었다고 해도 한번 호의를 베풀었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갈등을 만든 건 정호가 아니라 AL사입니다.
T.C사는 AL사보다 더하죠. T.C사의 접근 방법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적이었죠. 최초의 설득은 형식이었을 뿐입니다. 란이 조금만 협조적이었어도 T.C사가 데려가는 것은 쉬웠을 겁니다. AL사든 T.C사든 결국 계획이 수포가 되기 직전이 되서야 조잡한 설득에 들어갑니다. 다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혹하지 않았을 그런 설득말이죠. 만약에 그걸 AL사가 의도한 거라면 작가분은 정말 잘 숨겨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대 기업들이 정부를 대체하기 시작한 소설 속 세계에서 개인은 어떤 힘도 없습니다. 마치 자유롭고 더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자유의 환상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거대 기업이 보여주는 호의는 그저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그들의 힘입니다. 엉망진창이고 주먹구구식이라고 해도 그걸 뭉갤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 말이죠.
그래서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답답함이었습니다. 그건 너무 어두운 엔딩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연예계와 정재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슬픔과 부당함조차 알 수 없게 된다면. 그저 자신과 관계가 없고,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