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작가 소개를 먼저 읽으신 독자분들이시라면 약간 고개를 갸웃하신 분들도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쌍동이 자매의 엇갈린 운명을 그려낸 장대한 시대극. 환타지아, 그런데 단편??’
글에 들어서면 서두부터 예사롭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 작가들의 글 서두를 읽는 것처럼, 또는 실록을 보는 것 같은 약간 건조한 스토리 텔링은 이야기의 결말까지 이어지는데, 사실 이런 스타일의 글을 브릿G에서나 다른 곳에서 몇 번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분명 몇 번은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진 적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시대극의 경우 시대상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의 진행 사이에 생길 수 밖에 없는 틈을 메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요.
우리가 삼국지, 초한지와 같은 유명한 이야기를 읽을 땐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을 갖춘 상태로 읽기 때문에 시대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적어도 글에 몰입하는데 지장이 없지만, 익숙치 않은 시대와 배경을 접할 경우엔 설명이 부족하면 글 전체의 이해가 쉽지 않고, 설명이 길어지면 정작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몰입이 안 되는 문제가 있어서 작가분들에게 고민 거리를 안기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배경설명과 스토리텔링의 요철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추어 놓으신 수작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신을 향한 믿음의 삶을 잔인할 정도로 추구하는 카트리나의 삶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 같은 안젤라의 삶은 그 자체로도 대조적인데 작가님은 거기에 한가지를 덧붙이신 것 같습니다. 카트리나의 이야기는 구어체가 배제된 시간 순의 서술로 돌아봄 없이 한 길만을 걸어간 그녀의 성녀와 같은 외길의 삶을 보여주고, 안젤라의 경우 좀 더 생동감 있는 문체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게 더럽히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나가야만 하는, 수 많은 갈래길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삶을 보여줍니다. 상징적으로 성녀와 악녀의 이미지로 그려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는 그 자체의 의미라기보다는 삶과 죽음 사이에 선택권이 별로 없었던 그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한 양 극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완독하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실 겁니다. ‘이런 스토리면 두 사람의 배경이나 등장 인물을 더 넣어서 못 해도 중편 이상은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서사물은 단편으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는 아니지요. 그래서 작가님의 뛰어난 문장력과 전개력에 더욱 감탄하게 됩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에 대한 설명 또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아주 적절합니다. 인물들의 개성도 뛰어나서 세세한 묘사 없이도 글의 재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결말부에서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길지 않지만, 무언가 깊은 울림을 제 마음에 주었습니다. 요약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히자면 이런 게 아닐까요? (수능에 항상 나오는 문제 형식인데 이 글이 언젠가 문학 시험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번 고심해 보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던 쌍동이가 오랜 시간 후, 자신의 자매에게 찾아와 자매의 신성성을 완성해준다.
이 정도 분량의 글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단편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단편 성애자에게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주신 작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첨언:
‘메디치 가의 조부 키아리시모 1세의 증손자’ 라는 표현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표현인데 제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존재했던 표현인지 잘 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