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소설의 어려움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9년 3월, 조회 118

이 리뷰는 3막 5화까지 연재되었을 때 초고를 썼다. 리뷰를 완성하기 위해선 이 작품처럼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싶어서 리뷰가 좀 늦어졌다. 그동안 더 연재되었지만 그 연재분은 염두해두지 않은 리뷰다.

인간의 말을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 외에는 술술 잘 읽혔다.

“Riserino Piri, E Soski Fefes Zhi…”

뭔가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김새다. 정말 무작위였으면 asdfqwef dsfqwef dfefefaa mlikiolouiji 이런 식으로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키보드를 무작위로 두드렸을 때의 결과다. 만약 A부터 Z까지가 그려진 26면체 주사위를 굴리면서 글을 만들었다면 다른 식의 무작위 문장이 생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건 이 작품에서 인간의 말은 충실히 자음-모음의 형태를 갖고 있다. 실제로 발음을 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 리세리노 피리 에 소스키 페페스 지 뭐 이런 식으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므로 생략한다.

나는 ‘왜 이 소설이 재미있는지’ 잘 설명하는 리뷰를 좋아한다. 그뿐 아니라 ‘왜 이 소설이 재미없는지’를 잘 설명하는 리뷰도 좋아한다. 작가 멘탈을 조지겠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건전히 비평적인 입장에서다. 이 리뷰에서는 ‘읽으면서 작품이 왜 재미없었는지’, 내 감상임에도 나는 내 감상을 논리적으로 완전히 해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첫 발자국은 내딛은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리뷰를 쓸 때 장점과 단점 항목을 나눠서 적었지만, 이 작품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하다. 사실 이 작품 이전에도 몇몇 글들은 그런 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는 글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이유는 모른다. 다만 최근에 깨달은 건 이런 현상은 아마추어의 글에서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일종의 창작자가 거쳐야 하는 벽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이자 단점은, 이 글이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예전에 작가프로젝트에서 ‘개’를 주제로 공모전을 열었을 때, 나도 ‘개를 주인공으로’ 삼아 단편소설을 써서 낸 적이 있다. 주인공인 유기견이 동물들의 단체에 들어간다는 것까지, 이 작품의 플롯과 비슷했다. 고양이도 등장한다.

그 공모전에서는 결과에 나와있듯 떨어졌다. 자신작이었던 터라 아쉽게 생각한다. 최소한 심사평에서라도 언급이 되었으면 좀 덜 아쉬웠을 텐데… 내 생각엔 그 투고작보다 나을 것 없는 글들도 다른 공모전에서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유독 그 투고작만 찬밥 신세였다. 물론 내가 썼다고 해서 내 작품들의 재미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긴 할 것이다. 작가의 자선단편집이 자주 팬들 사이에서 소소한 논쟁에 휩쌓이는 것과 같은 이유다.

어쨌든 그 이후, 이래저래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다.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인기가 없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 정발이 끊기거나 연중이 되거나 조기종결되거나.

간단히 말하자면, 동물소설은 웹소설계에서의 정통판타지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아니, 그보다 환경이 더 열악하다. 볼 수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은 없으니까.

브릿지에서는 개를 소재로 공모전을 연 적이 있다. 제2회 작가프로젝트다. 개 공모전에서는 응모안내에서 예시로 든 작품들이 있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나 [벙어리 목격자] 등이다.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안 읽어본 작품이 모두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작품이어도 작품들 중에는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보다 그냥 개가 서브주인공으로 등장하기만 하는 작품이 더 많다. 당선작도 그렇고. [바스커빌 가문의 개]의 진정한 주인공은 홈즈나 왓슨이 아니라 개다! 라고 해도 앞에 ‘진정한’이란 수식어가 필요한 시점에서 주인공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어쨌든 개, 정확히는 동물 주인공의 작품은 그다지 없다. 시장논리에 빗대어 보자면 수요가 없다. 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그건 거의 당연하다는 듯이 몬스터 종류를 일컫는 것이다. 그것마저 대체로 인간이 전생한 것들 위주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종류의 소설은 동물 소설의 범주와는 다른 영역으로 구분지어야 할 것이다.

동물 주인공 장르가 ‘재미있을 이유가 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비주류인 것도 이상한 장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동물이 주인공인 ‘소설’. 애니메이션 쪽은 많으니까. 그쪽은 아마 동화로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이 풍부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동물은 많이 찬밥신세다. 무생물인 로봇보다 훨씬 인기가 없다.

몰입이 안 되는 걸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동물과 로봇. 같은 비인간임에도 생기는 저 차이의 어느 지점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오이를 못 먹는 사람처럼 유전자적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런 의문으로 인해 성공한 동물 소설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그 작품들은 재밌다. 그러나 재미없는 동물 소설도 있다. 내 의문은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납득한 건 있었다. 나도 내 소설을 독자의 입장에서 봤다면 이 작품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무슨 스토리인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재밌지는 않네.’

만약 대중성을 위해 개선점을 찾는다면, 이 글은 이 글 내에서 더 재밌는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보단, 시점의 차이에서 생기는 저 간극을 해결하거나 덮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답일 것 같다. 이를테면 몇몇 성공적인 사례를 볼 때, 동물이 주인공일 경우에는 1인칭 주인공 시점보다는 관찰자 시점이나 작가 시점이 더 효과적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찾아보니 그렇다. 어쩌면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시작된 카메라 시점이 어렸을 적부터 학습되어 심리 기저의 형성이 그런 식으로 되버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혹은 그냥 결국 인간은 동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심리가 작용한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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