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제가 브릿G에 손을 담근 이후로 가장 빨리 읽은 소설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노말시티님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만한 타고난 이야기꾼이시고,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분량에 비해 속도감이 아주 좋습니다.
속도감이 좋다고 표현한 것은 글의 진행 자체는 작은 틈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지만 군데군데 있어야 할 전개의 구멍 따위는 보이지 않아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겁니다. 참 놀라운 솜씨입니다.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세 사람의 이야기는 시계의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데 주인공과 선미, 선미와 선정, 선미와 주혁, 동민과 주혁 등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탁탁 아귀가 맞게 돌아가서 끝까지 읽으면서 의문점이 거의 생기지 않을 정도의 친절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성인 취향의 이야기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라서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얼굴을 붉힐 일도 없습니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뒷 이야기가 금방 추측이 되는 정도의 전개로 결말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참신함이라는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팩트’ 이후로 더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기는 힘들게 된 지라 뒤통수를 치는 결말의 상상력보다는 빈틈없이 짜여진 페르시아산 양탄자같은 이 작품이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게 솔직한 제 감상입니다.
많은 글을 써보신 노련함이 빛나는 부분은 역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의 진행은
동민과 부모–동민과 선미–선미와 선정–선정과 동민–동민과 주혁–동민과 선정–동민과 선미
이런 인물 사이에 관계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그 과정이 아주 매끄럽습니다.
인물의 설정도 훌륭해서 부족한 게 없지만 무엇보다도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가 아주 살아있는 것처럼 계속 변화하면서 꿈틀거리는 느낌으로 글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큰 역할을 합니다.
인물 간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데 그 사이에 이 작품의 제목인 ‘일란성’ 즉 쌍동이라는 핵심적인 주제를 놓치지않고 가져가는 것도 제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장점입니다.
이 작품에는 쉴 틈없이 여러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는데 그 사건 사이사이에 두 사람, 쌍동이인 선미와 선정의 관계변화가 작품 전체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글의 또다른 재미가 될 겁니다.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동민에게 접근하는 과정과 선정과 선미의 성격이 사건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님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솜씨에 감탄하게 되는 건 부록이구요. 예를 들어 동민이 부친상을 당한 자리에서 선정과 관계를 가지게 된 후, 선미와 선정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둘 사이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초반에 선미는 선정에게 질투심 비슷한 감정을 가진 유약한 성격으로, 선정은 소유욕과 강한 정복욕의 소유자로 그려지는데, 사건을 겪음에 따라 두 사람의 성격은 점차로 변화를 겪게 되고 그 이면에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일란성 쌍동이라는 주제가 글 전체를 관통하게 되는 거지요.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연이어 벌어지던 사건은 드라마처럼 파국을 맞게 되는데 그 방식이 또한 아주 재미있습니다. 가족에게 상처를 받고 자라 가족에 집착하던 동민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해오던 세주가 자신도 아니고 관계를 맺은 선정도 아닌 선미와 주혁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합니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멋진 결말 아니겠습니까. 노말시티님의 센스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바쁜 시간에 슬쩍 읽으면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요약한 시놉시스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저는 요즘 드라마를 잘 보지 않습니다만 포털 사이트에서 본 칼럼글을 읽고 크게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 방송사의 서로 다른 드라마들에서 등장인물들이 간에 이상이 생겨서 죽게 되니 서로 간 좀 이식해주라는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말시티님의 이 글이 드라마화 된다면??
드라마 작가분이 글의 느낌을 살리기만 한다면 최소 중박 이상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감상의 포인트로 제시해주신 부분이 있어 답변을 남기자면
1. 소재는 식상하였으나 전개는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2.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는 주로 주인공의 동민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글의 몰입에 방해되는 부분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글의 개연성? 제 짧은 식견으로는 흠잡을 데 없습니다.
3. 드라마화해도 좋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표현이나 설정에 아쉬움이 없습니다. 아쉬운 건 어처구니 없는 인물에 납득 안가는 행동들이 난무하는 요즘의 티비드라마겠지요.
4. 많이 등장했던 소재를 재료로 삼으셨기에 신선함을 비평의 타겟으로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후반부의 등장인물, 사설 탐정과 정체모를 선정의 남자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야기에 색깔을 입혀주지 못해 조금 아쉬웠습니다.
특히 탐정의 경우엔 후반부의 새로운 중심축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 (주혁의 죽음에 발맞춰 등장했고, 주혁의 갈등구조를 이어받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평면적인 인물로 짧은 생을 마치게 된 것이 개인적인 불만사항이라고 할까요?
자, 이제 노말시티님을 방송국으로 보냅시다!!
한국 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고들 합니다. 뻔한 등장인물과 뻔한 성격, 뻔한 대화가 난무한다더군요.
제목에 막장드라마라고 썼지만 이 소설은 한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고 마지막 동민의 혼잣말을 음미하시면서 잘 짜여진 이야기의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미 늪에 빠져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