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핑>을 읽고 처음 느낀 감정은 ‘무서움’이다. 무섭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 정의를 찾아본 기억이 없어 사전에 검색해봤다.
무섭다[무섭따]
1. 어떤 대상에 대하여 꺼려지거나 무슨 일이 일어날까 겁나는 데가 있다.
2. 두려움이나 놀라움을 느낄 만큼 성질이나 기세 따위가 몹시 사납다.
3. 정도가 매우 심하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는 했던 ‘무섭다’란 단어가 내 감정을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줄이야. <블러핑>이란 작품을 읽고 난 뒤 느꼈던 복잡미묘한 감정은 무서움이 맞았다. 칼이나 총―물론 등장하지만, 주인공에게 겨누기만 하니까―처럼 무시무시한 무기로 직접적인 살해 장면이 나오지 않고, 듣기만 해도 거북한 욕설이 난무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글을 읽는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는 요소는 무엇일까.
무섭도록 침착한 대화다. 소설에 대화가 나오면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에 맞춰 화자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그러나 <블러핑> 속 두 화자의 목소리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다. 미스테리한 목소리를 유추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누가 로봇이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두 화자의 태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이는 혼란을 증폭시킨다.
단순한 구조의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하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된다.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어떤 캐릭터를 선택해도 공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어떤 캐릭터가 인간인지, 흉내를 내는 건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겁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공포를 절정으로 이끈다.
그 배달원이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 때문에 공포는 해소되지 않는다. 게다가 위험을 깨달은 주인공은 그 배달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하고, 그에게는 무료 쿠폰이 있다. 수상한 배달원이 두고 간 쿠폰 뭉치. 그것이 배달원의 선행일지 혹은 훗날의 살해를 위한 덫인지 우리는 알 수 없기에 공포가 가중되는 것이다. 곱씹을수록 무서운 이야기라면 <블러핑>은 참 잘 쓴 공포글이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배달원이 전달한 쿠폰처럼 공포심을 ‘툭’ 던지고 간 무서운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