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게다가 그 사람이 추천하는 작가나 책 이야기가 있다면 흥미는 더욱 커진다. 나 역시 글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내고는 한다. ‘책의 가치’나 ‘좋은 책’에 대한 정의 같이 누군가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주제를 진지하게 얘기하다 보면 글을 읽는 재미가 깊어지는 것 같아 뿌듯해하고는 했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던가, 내 마음에 오롯이 들어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신예 작가의 단편집이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표지를 장식하고 있으면 ‘내가 먼저 알아봤다’라는 기쁨이나 자부심보다 하나의 말로 정의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 나를 감싼다. ‘―물론 이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지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감정은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익숙한 것이다.
마이너와 마니아. 두 단어로 위의 알 수 없는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리스어로 광기를 뜻하는 마니아는 소위 특정한 분야에 ‘미친 사람’을 뜻한다. 마이너는 작음을 뜻하는 라틴어다. 대중성이 낮은(작은) 분야에 미친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자부심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다. 마이너와 마니아는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를 풀어갈 때 정형화된 이미지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문화 분야에서 마이너 세계를 표현하다 보면 고정관념이 드러나기 쉽다. <책과 친구의 계절>에서도 스테레오 타입이 나타난 부분이 많다.
마이너 취향을 지닌 주인공의 진정한 친구 관계에 대한 갈증. 가볍게 넘어갈 수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익숙함보다는 식상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부분을 노련하고 능숙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주인공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새로운 등장인물에 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자신과 ‘마음의 무늬’가 다름을 빠르게 판단하고 불편함을 드러낸다. 주인공의 솔직한 마음을 들은 독자는 그에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이저의 성격을 지닌 수현은 주인공을 속이고 그의 마음도 속이고 어쭙잖은 훈계까지 덧붙인다. 이어서 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은 오롯이 주인공 아라의 몫이다. 꼭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이 마음을 연 후 겪은 결말이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마이너이자 마니아이다. 즉, 아란인 것이다. 마음의 무늬를 찾는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수현이 말한 것처럼 ‘현생에 없’지는 않다는 걸, 그리고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혼자만의 책장에 넣어두지 않기를 나를 비롯한 세상에 있는 모든 아란에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