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OECD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오명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른 해를 넘게 살아오는 동안, 친구의 지인이나 가족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을 두 번 정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한 명은 결국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명은 다행히 빨리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 잊어버린 탓에 온 가족이 마음을 졸이며 오로지 기도만 했지요. 의사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몇 달 뒤 기적이 일어났고, 그 청년은 사회로 복귀했습니다.
자살의 이유는 정말이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단 한 가지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가난, 대인관계, 폭력, 좌절, 트라우마, 우울증 등등으로 원인이 세분되기도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같은 말을 남기는 것을 보면요.
‘이 세상 천지에 나만 혼자다.’
너무나 간명해서 허탈해지는 말이지요.
<뽕스 빌리지>는 자살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서봉수는 공연을 기획하고 라이브클럽을 운영하며 만성 적자에 시달립니다. 소싯적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상잠저수지를 찾아가지요. 상잠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누에를 기르는 일이 주요 수입원인 마을입니다.
때마침 상잠저수지에선 상잠경찰서의 잠복수사팀이 작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서봉수의 자살 시도로 오랫동안 공들인 검거작전이 물거품이 되고 말지요. 서장은 서봉수에게 작전 비용 15억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합니다. 파산한 서봉수에게 그만 한 돈이 있을 리가 없지요. 서장은 국가자살방지원의 민간요원으로 활동하며 자살시도자를 구조하면 인당 5억원을 상계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국가자살방지원은 심리부검, 자살징후추측알고리즘을 활용해 자살자의 감소를 목표로 하는, 대통령 직속 시범운영기관입니다. 서봉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민간 요원이 되지요. 그리하여 자살 사건이 많이 발생한 상잠저수지 옆 ‘카페 뽕삘’이 그의 새로운 직장이 됩니다. 저수지로 뛰어드는 자살시도자들을 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지요.
서봉수는 오해를 받고 마녀사냥의 타깃이 된 재석을 구하고, 이렇게 만날 줄은 절대로 몰랐던 철천지원수도 구하고, 자살할 확률이 높은 이웃도 구하려 노력합니다. 그 과정은 꽤 잔잔하게 진행되는데 사실 이 소설의 진가는 후반부에서 드러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장편은 단편에 비해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기에 완독 후 느낄 심리적 보상에 대한 기대도 크기 마련이지요. 최고의 보상 중 하나는 바로 뜻밖의 반전일 것입니다.
작가는 전반부에서 주의 깊게 흘려놓은 단서들을 빠르고 밀도 있게 조합하여 후반부에서 독자가 상상하지 못했던 진실을 연달아 드러냅니다. 이 과정에서 서술 트릭이 사용되지요.
서술 트릭은 지금은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아직도 이것을 적시에 제대로ㅡ그야말로 뼈를 때리는 느낌으로ㅡ 구사하는 작가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이름과 별명을 이용한 트릭, 나이와 날짜를 이용한 트릭, 화자의 비밀스러운 전환에 의한 트릭, 외모나 직업에 대한 독자의 편견을 이용한 트릭 등등 서술 트릭의 종류는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독자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설계하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지요. 그러나 이것이 제대로 구현되면 독자는 장편을 읽느라 투자한 시간과 노력, 기타 부대비용을 한꺼번에 잊게 되는 법인데, 이 작품이 바로 그렇습니다.
게다가 작품의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미스터리’보다는 ‘휴먼드라마’에 가까운 분위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독자인 저는 방심하고 있었죠. 그러나 작가가 처음부터 퍼즐을 맞춰 보라고 요구했더라도, 저는 후반부의 반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칫 전개가 식상하게 흐르거나 휴머니즘만을 강조하는 자살 소재의 소설과 달리 이 작품은 플롯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예측불허의 반전에 이어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작가가 개연성과 동기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이는 좋은 습관이 있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읽는 내내, 흠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알려 주다니, 싶었습니다. 세밀한 설계도를 짜는 일을 즐기는 타고난 작가, 라는 것은 환상일 테고 아마도 이런 설계도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쳤을 테지요. 독자인 저야 작가의 고통이 클수록 독자에게 떨어지는 콩고물도 크기 마련이기에 그저 즐겁기만 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쉽게 받아먹기만 해도 되나 싶어서 이 리뷰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작가님,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