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는 어렵다. 영상매체에서도 역시나 어렵다. 상황을 상징하는 시각적, 청각적 요소, 즉 클리셰가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을 설득하는 것 역시 힘들다. 우리는 ‘선’을 행하라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선’을 연기하는 배우를 보며 더 까다롭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조건 없는 ‘악’은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이 또한 철저하게 분석한다.
영상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다. 그만큼 스릴러라는 장르는 표현하기도, 설득하기도 어려운 장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각적인 묘사도, 다양한 청각적 요소도 없는 ‘글’에서는 어떨까. 아무래도 어려움은 배, 아니 제곱으로 늘어날 것이다.
스릴 넘치는 소설의 장점은 몰입이 쉽다는 것이고, 단점은 작가의 문장이 호흡을 따라가지 못하면 실망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그 호흡을 이끌어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작가는 첫 작품임에도 독자의 긴장감을 능숙하게 이끈다. 특히 인물별 묘사가 꽤 구체적인 게 인상적이다. 외적인 모습이 아닌, 상황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요소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표현해 읽는 이로 하여금 이해를 돕는다.
<살아남은 소년>은 내가 이 플랫폼을 통해 읽은 작품 중 꽤나 분량이 많은 축에 속한다. 그러나 그 긴 이야기가 짧게 느껴질 만큼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혐오에 대한 다양한 정의 중 이러한 것이 있다.
‘혐오감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해로운 것이 창이라면 혐오감은 방패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살아남은 소년’이 가진 혐오감에 관한 가장 적합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시작된 무시무시한 이야기의 끝이 어떨지 감히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대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에 관한 단점이 없냐 누군가 묻는다면 초반 매회마다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해 소설 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이 흠이라면 유일한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