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과 우주에 대한 고찰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16픽셀의 빈틈 (작가: 천가을,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3월, 조회 107

우주에 대해 고찰한 재미있는 짧은 단편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상력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품을 전 좋아합니다.

현실 속의 시뮬레이션, 달리 말해 가상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매트릭스’나 ’13층’에서도 다뤄진 인기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부분은, 그 관계를 단순히 ‘꿈 속의 꿈’ 이나 ‘시뮬레이션 속의 시뮬레이션’으로 묘사하지 않고 우주론적 담론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낸 우리 우주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을, 보다 상위 세계에서 일부러 심어 넣은 난수로 인한 것으로 묘사한 부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소재로 삼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을 작가님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다만 미시 세계의 불확정성 때문에 ‘현실을 똑같이 시뮬레이션 하기는 어렵다’ 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 아예 ‘현실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라고 단정하는 부분은 의아하긴 합니다.

상위 세계의 존재들은 우리 인간들을 바라보며 우리로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 또한 시뮬레이션 속의 존재는 아닐까 의심을 갖게 되지요. 아니나다를까, 작품의 전개는 그보다 더 상위의 세계로 올라갑니다. 그 상위 세계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따르고 있는 우주로, 우리로서는 그 존재를 상상하기 어려운 어떤 존재가 있어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이용해 모든 것을 예측합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던 아인슈타인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시겠네요.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반전이 있습니다. 이 결정론적 우주 자체가 사실 ‘철훈’의 회사에서 만든 시뮬레이션이었던 거죠. 이러한 순환적 세계관은 테드 창의 단편 ‘바벨론의 탑’이 떠오릅니다. 흥미로운 상상입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속의 시뮬레이션 속의 시뮬레이션이 바로 현실일 수도 있다는 결말은, 지적 유희라기 보다는 언어 유희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뭔가를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시뮬레이션 대상보다 큰 세계가 필요합니다. 시뮬레이션 속 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등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한 개 이상의 입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근본적 한계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 없이 (객체를 단순화시킨다는 간략한 언급은 있지만) 마무리 되면서, 지금까지 끌고 온 철학적 담론은 풍선처럼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결말이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결말에서 느낀 제 감상은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크로스오버 하는 것처럼, 실제 상위x2 세계의 우주 모습과 철후의 회사에서 만든 우주 모습이 우연히 비슷한 모습이라서 겹쳐 보인다’ 정도였습니다 (내 상위 우주는 이렇지 않아!).

그러나 작가님, 독자 여러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이 정도 분량의 단편에서, 이러한 결말이 결코 흠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전개로 진행되고, 다시 가볍게 마무리되는 전개는 전반적으로 귀엽고 재미있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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