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산책을 나가기 전에 읽으면 아주 좋을 단편이다. 오싹한 동화이자 경쾌한 로맨스이며, 두 주인공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컨버터블 차안에 서로의 마법에 걸려 허우적대는 잔혹판타지다. 혹시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잠시 미뤄뒀다가 겨울을 넘기고 장마가 오기 전 후덥지근하지만 살짝 바람이 불어주고 하늘은 선명한 저녁에 읽어보기를 권한다. 산책을 하는 동안 스토리를 분석하느라 다시 곱씹다 보면 어느샌가 기분좋은 엔진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비켜주세요. 차 지나가게 골똘히 생각하다 차도로 걸어다니시면 안됩니다.)
차 안에서의 반전은 환상특급 (1983, Twilight Zone : The Movie)의 프롤로그 이래로 많은 영화와 소설에서 재밌게 사용되어 왔다. (존 랜디스 감독의 작품으로 두 남자가 어두운 밤에 차를 타고 가다가 서로 무섭게 재밌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러다 한 남자가 정말 무서운 걸 보여준다며 괴물로 변신한다. 이 남자는 4번째 스토리가 끝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해 재미를 더해준다. 차 안의 인물들의 관계가 역전되는 장면으로 첫번째는 아니겠지만 한때 가장 유명하게 거론되던 장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지운 감독님의 “악마를 보았다”에서 살인마 최민식이 강도들이 타고 있는 택시에 합승하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Brain Freeze”(아이스크림 두통)는 더 복잡하고 짜릿한 관계로 발전시켰다. 여자는 월등한 포식자로 남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죽여서 버린 뒤에 마법의 달이 뜨는 날이면 되살려낸다. 남자는 피식자가 되버린 포식자로 여자에게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심장을 잡혀 버렸다. 이 둘은 “사랑”이라는 최강의 마법에 걸려 서로를 반복적으로 괴롭힌다. 다분히 여성중심의 결혼생활(혹은 연애생활)에 비유될 수 있고, 그 굴레를 끊는 방법 역시 요즘 세태가 반영됐다고 보여진다. 찬 것을 한꺼번에 들이켜서 오는 아이스크림 두통(Brain Freeze)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증상이고, 이 작품에서 역시 시간이 약인 것처럼 보여진다. 수도 없이 반복되던 끔찍한 데이트가 갑작스레 끝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인다. 9시 30분에 나온다는 악마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진짜 엔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다시 반복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여운인지..)
로미오와 줄리엣식 설정은 웹소설에서 재밌게 변형된 형태로 종종 등장하는데,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파괴본능이라고 하소연하는 경우다. 너무 쉽게 상대방을 죽여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엽기적인 설정을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법의 달이 뜰 때 다시 살려낼 수 있도록 변주했다. (그 사이의 무료함을 짜증내하는 극강의 여성 몬스터다.) 남자를 똥강아지 애완견 다루듯 할 수 있다고 부드럽게 들려주는 대사들을 보면 여성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추측되기도 한다.
작품의 전개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토리에 있기도 하지만, 자동차의 속도감도 한 몫 한다. 극적인 순간들에는 왠지 차의 속도가 빨라졌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암시가 생기기도 한다. 크게 보면 아이스크림 두통에서 막 깨어난 상황, 연인들 간의 본격적인 밀당, 엔딩으로 나눌 수 있는데, 노골적인 속도조절의 표현이 없음에도(암시는 있다.) 차의 속도가 달라진다고 느껴졌다. 잘 만들어진 소설은 이런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글자를 읽었는데, 속도감이 느껴진다라고 할까?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추천하기는 어렵겠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평소에 쌓인 내공으로 단편소설의 재미를 우려낸 작품이라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