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아있는 무협에 관한 몇 가지 것들..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고독(蠱毒) (작가: 매도쿠라, 작품정보)
리뷰어: 리컨, 19년 1월, 조회 188

세로쓰기로 만들어진 대본소 무협지를 시작으로 마지막으로 읽은 무협소설이 김용님의 작품이었습니다. 역사순서대로 2번 정도 읽은 후에는 김용님의 작품을 넘어설 작품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무협소설은 읽지 않았습니다. 벌써 20년도 더된 일이고, 그뒤로는 “동방불패”같은 영화나 “절대쌍교”, “풍운”같은 만화로 무협의 재미를 추억하곤 합니다. 퓨전무협, 판타지무협 작품들은 이름만 들어본 수준입니다. 10년쯤 전에 권가야님의 “남자이야기”라는 독보적인 무협만화를 본 뒤에 좌백님의 “대도오”라는 작품을 읽어볼까 했는데, 만화의 여운이 강해서 오래도록 미루다가 여태 깜빡하고 있습니다. ^^;;

“고독(蠱毒)”은 이런 아재무협팬의 입장에서는 무협의 틀을 빌린 로맨스 추리물로 보입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무협소설”이겠지만, 무협소설에 등장할 법한 클리셰가 거의 없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차(茶)를 주요소재로 삼고 그 종류나 관련된 장면에 여러 의미를 빗대어 전개하는 점이 좋았지만, 무협의 다양한 클리셰들은 거의 찾기 어려웠습니다. 아재무협팬들(사실상 할배세대지만)에게 이런 클리셰들은 이야기 전개에 상관없이 인장처럼 등장해줘야 하는 것들이지만, 장르를 구분하는데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그냥 읽고 나면 내가 무협소설을 읽었구나 하는 것과 요새 무협스타일은 이렇구나 하는 차이입니다.

주인공인 무당파의 초일류고수인 “장연청”과 차를 잘 아는 “남연”이 청성파의 초고수이자 차기장문인으로 기대되는 “이검삼” 일행과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어, 재구성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장연청은 신분을 숨기고 좋아하는 차를 마시기 위해 사천지방의 한 객잔에 들립니다. 이검삼의 청성파 일행이 장연청을 수상히 여겨 다가와 인사를 하고 신분을 묻습니다. 여기서 이검삼은 장연청의 풍모에 그냥 물러나서는 안됩니다. 무림인들은 자기들 본가에서는 절대고수가 온다하더라도 얼굴을 모르거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면 그냥 물러나지 않습니다. 똥개도 자기집에서는 오십은 먹고 들어간다는 (오십프로 정도의 플러스 요소가 있다는 뜻) 말처럼 자기구역에서는 일단 짖고 보는 게 불문율입니다. 그러면 마실나왔던 동료들이라도 우루루 몰려오게 되니까요. (우리가 욕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인 중화중심중의와 떼거리 문화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전개의 결과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연청에게 독하게 덤비다가 심하게 두드려 맞아 부상을 당한 채 도망치거나 연청의 위압적인 무공에 주눅들게 됩니다.

이 부분은 남연과의 로맨스와 곁들여 다시 바꿔보자면 장연청이 애타게 고대하던 차를 남연이 다도(차마시는 예법)의 풍미를 더해 마시게 해주겠다고 하고, 이검삼 일행은 남연의 신분도 의심해 독공을 사용하는 무림인처럼 보이니 차도 끓이기 전에 청성파로 압송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습니다. 장연청은 남연에게 사천지방의 다도 예법(?)대로 물을 끓이고 잔에 따르라고 요청합니다. 그동안 자신은 이검삼 일행이 남연과 다기(차를 담고 마시는데 사용되는 모든 도구)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호언합니다.

이에 화가 난 이검삼 일행이 덤벼들지만 장연청은 차근차근 제압해 가고 남연은 평온한 듯 자신의 일을 묵묵히 진행합니다. 나동그라져 어이없어 하는 이검삼에게 장연청은 자신들이 몇 수만에 나가떨어졌는지 세어보라고 합니다. 이검삼도 고수인지라 확인해 보니 10수인 걸 알게 되고 장연청은 자신이 무당파의 “불초과십수” 라고 밝힙니다. 그제사 이검삼은 납득하고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고 자리를 뜹니다. 연청은 차분히 남연이 준비한 차를 마시고 서로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이렇게 허세가득한 액션장면을 묘사해야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잡지와 풍문에 따르면) 무협소설이 텍스트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그림으로 시작된 서양의 히어로물과의 극명한 차이 중 하나입니다. 옛날 무협지(!)에서부터 시작된, 무공 펼치기 전에 초식 이름외치기가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글로 온갖 묘사를 하면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그림을 그렸으면 말을 쓸 공간을 많이 줄였겠지요.) 레벨을 대표할 수 있는 멋진 초식 이름 하나를 대면 비교가 쉬워지고 장면을 연상하고 납득하기 쉬워집니다. 거기다 강도를 표시하기 위해 물건을 부숩니다. 의자다리가 부러지는 것과 객잔 하나가 초토화되는 것은 확연하게 결과가 다르다는 걸 글로써도 알 수 있죠. 허세에 극치로 과거에 객잔을 부술만한 무공을 가진 무림인이 어떤 기인을 만나 싸웠을 때 찻잔 하나 부수지 못하게 된다면 그 기인의 무공수준을 글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허세의 극치죠.

양조위, 장쯔이 주연의 “일대종사”(왕가위 감독)에서 두 주인공의 대결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됩니다. 객잔(?)에서 물건 하나라도 부서지면 자기가 진 것으로 하겠다는 양조위의 허세를 장쯔이가 무너뜨리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상대의 약속을 깨는 건 재미를 위한 무협이 바탕에 깔고 있는 마초적인 힘의 정의에 기인합니다. 작품성있는 무협은 이런 부분을 별로 부각시키지 않지만, 아쉽게도 많은 작품들이 이런 속성을 담고 있고 저질문학이라고 지적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무협은 이런 부분을 확실히 재밌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 “고독”도 그런 시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영화 “일대종사”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럼에도 저같은 아재무협팬들은 이런 클리셰를 대개 기대합니다. 장르문학에 어떤 요소나 속성들이 반드시 들어있어야 하고 팬들은 이런 중요 속성들을 즐기면서 나중에 재밌게 비트는 것을 즐기듯이 무협에 저질처럼 보이는 요소일지라도 그걸 즐겼던 시절을 추억하는 재미에 웃곤 합니다. 스톨홀롬 증후군(인질 신드롬)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요즘은 무협소설도 질적인 향상을 꾀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다고 들어서 좋긴 하지만, 여전히 예전 무협의 많은 클리셰들(좋든 나쁘든)이 가끔씩 보였으면 합니다. 이곳에서 좌백진산님의 중단편 무협을 발견했습니다. 이제는 액션보다 의식의 흐름이나 느와르 장르의 허무주의 혹은 복수극이 보이지만 이 역시 예전 무협이 가진 속성의 진화라고 생각됩니다.

덧붙여 무협소설에서 로맨스는 기본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성향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감을 갖자마자 신분차이, 소수민족 갈등 아니면 선대의 원한 등등 온갖 걸림돌들이 커플처럼 따라다닙니다. 연청과 남연이라면 당연히 명문정파의 고수와 신분을 속인 사파의 우두머리 갈등이 있어야 하고, 초초와 방용화가 비교적 쉽게 이런 제약을 뛰어넘었다면 일단 몇 년 간은 청성파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없어야 하고, 만일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면 방용화는 이검삼을 비롯한 모든 청성파인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었어야 합니다.(구시대 무림인들은 당위적인 면이 많습니다. 눈 부릅!!) 무림인들은 타인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그래서 허구헌 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쌈박질을 합니다.) 특히 정파인들과 사파인들을 기본적으로 물과 기름입니다. 이런 로맨스도 예전 무협지(?)의 잔재겠습니다만 “고독”의 로맨스가 이런 구시대적인 면을 혁파하는 새로운 장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보기에는 좀 밋밋한 편입니다. 상황설정도 예전 것들에 비해 많이 자유롭고 사람들도 자유롭습니다. 무림인들은 민주주의를 모른다는 게 기본적인 인식이라고 봅니다. 주인공은 무조건 이기고 보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입니다. 이런 구시대 무림의 적폐를 청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용님의 작품을 읽은지 오래되서 그런지 이제는 왠지 훌륭한 무협소설이 나와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찾아보기에는 무분별하게 너무 많은 작품이 나와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 무협은 이랬는데, 요즘 무협은 이렇구나를 넘어서 이제는 이런 수준의 무협소설이 나왔구나 하는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며 간간이 “고독”같은 작품으로 감을 유지해 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추신 : 평소보다 많이 쓰는 바람에 퇴고를 하지 못해서 혹시 실수하는 내용이 있었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쓴게 아까와서 지우지는 못하겠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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