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선’과 ‘가족 구성원 내부의 목소리’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작가: 현이랑, 작품정보)
리뷰어: 이두영, 19년 1월, 조회 108

저절로 몰입했습니다. 그만큼 흡입력이 강한 글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로 인해 낡은 시골집에 모인 일가 친척들, 그리고 의문의 시체.

이야기를 발생시킬 사건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식구들 간의 언쟁과 행동을 통해 그들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공기를

마치 서서히 누수되는 가스관의 가스마냥 은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흘려내어

마침내는 긴장의 향내가 자욱하게 들어찹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분명히 몰입하여 읽었고 (즉 재밌게 읽었고)

다 읽고난 다음에도 그 감상의 여운이 훌륭하게 남았음에도 불구,

무언가 어느 한 지점이 저로하여금 고개를 갸웃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열린 결말’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미완결’ 때문에 내가 이 알 수 없는 느낌을 받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결말을 분명하게 매듭짓지 않는 이야기,

즉 결말이 열려 있는 이야기에 딱히 불만족하거나 하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미완의 결말을 접하면서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느낌’을 체험함이

더욱 만족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느낀 아리송함은, 결말을 분명히 매듭짓지 않았다는

‘열린 결말’의 측면 때문에 빚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대체 내가 느끼는 이 아리송함, 분명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느꼈으며

지금도 그 느낌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상스레 눈에 낀 모래알처럼 머릿속에 걸리는 무엇,

그 무엇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 정체를 저 스스로 자문자답해보았습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브릿G에 ‘리뷰’라는 걸 작성하게 된 계기입니다.

 

 

짧게 쓰려던 게 생각보다 주저리주저리 길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이 작품에 몰입했고,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인가봅니다.

 

흔히 ‘장르소설 쓴다’라고 하면 그것을 ‘펄프픽션 쓴다’라는 말과 동일하게 간주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듣지도 않은 채 백안시하는 태도를 종종 접합니다.

 

만약 그런 선입견을 가진 자에게 증거 작품으로 보여줄 글을 고르라면,

저는 이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봐라, 온라인의 장르물과 펄프 픽션이, 이걸 보고도 동의어로 보이냐?’ 라고요.

가족중심 전통사회의 붕괴를 꿰뚫는 날카로운 안목만으로도,

이것은 소위 ‘문단’이라 일컫는 집단이 추구한다는

‘순문학’ 작품들 사이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몇몇 ‘순문학’하시는 분들 글 보다 더욱 예리하고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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