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몰입했습니다. 그만큼 흡입력이 강한 글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로 인해 낡은 시골집에 모인 일가 친척들, 그리고 의문의 시체.
이야기를 발생시킬 사건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식구들 간의 언쟁과 행동을 통해 그들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공기를
마치 서서히 누수되는 가스관의 가스마냥 은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흘려내어
마침내는 긴장의 향내가 자욱하게 들어찹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분명히 몰입하여 읽었고 (즉 재밌게 읽었고)
다 읽고난 다음에도 그 감상의 여운이 훌륭하게 남았음에도 불구,
무언가 어느 한 지점이 저로하여금 고개를 갸웃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열린 결말’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미완결’ 때문에 내가 이 알 수 없는 느낌을 받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결말을 분명하게 매듭짓지 않는 이야기,
즉 결말이 열려 있는 이야기에 딱히 불만족하거나 하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미완의 결말을 접하면서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느낌’을 체험함이
더욱 만족스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느낀 아리송함은, 결말을 분명히 매듭짓지 않았다는
‘열린 결말’의 측면 때문에 빚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대체 내가 느끼는 이 아리송함, 분명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느꼈으며
지금도 그 느낌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상스레 눈에 낀 모래알처럼 머릿속에 걸리는 무엇,
그 무엇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 정체를 저 스스로 자문자답해보았습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브릿G에 ‘리뷰’라는 걸 작성하게 된 계기입니다.
1. 우선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서 ‘열린 결말’과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분명하게 서술되지만 않았을 뿐, 제시되는 내용을 통해 사건의 주요 맥락은 파악되며
결말부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구체적인 바는 알 수 없어도
그것이 파국적 상황의 연장선상일 것임은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이야기가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라는 점을 근거로
개인적 취향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지언정
결말이 확실치 않다, 라는 말은 썩 맞는 말이 아닌 셈입니다.
결국 앞서 밝힌 바였지만, 결말부 서술의 완결성 여부가 작품에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는 요인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2.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으며 제가 느끼는 ‘아리송함’의 정체를 파악하려 노력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리뷰와 저 또한 마찬가지의 감상을 가졌습니다.
특히 ‘사건의 발생’ 이후, 가족들 간에 벌어지는 발화와 행동으로
숨겨진 이면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전개 방식은 정말 탁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보니 결국 또 다시 결말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고 마네요.
그렇다면 역시나 제가 느낀 ‘아리송함’은, 어쨌든 ‘결말’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해서 저는, 결말이 ‘열린 결말이냐 완결된 결말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결말부를 살펴보자’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실마리가 잡혔습니다.
“우리 모두 공범이다”
바로 작중 인물로 등장하는 둘째 고모가 했던 말입니다.
저 말을, ‘가족 구성원’인 둘째 고모가 했다는 점이 실마리였습니다.
3. 이 작품의 핵심은 같은 혈육임에도 불구하고
식구들과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주인공 ‘나’의 스탠스입니다.
‘가족 구성원들’과 거리를 이격한, 사실상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주인공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일종의 ‘이방인’적인 태도로 밝힙니다.
이 작품은 추리/스릴러의 양식을 빌려 극적긴장감을 일으키면서
주제적으로는 전통적 ‘가족 중심 사회 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줍니다.
전통사회와는 달리 긍정적 기능만 하지 않는 ‘가족’이라는 것,
1인가구가 증가하는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가족’이라는 것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처럼 따뜻하고 훈훈하기보단 차갑고 무거운 것이기도 합니다.
이 주제의식을 성립시키는 핵심인자가 바로 주인공 ‘나’입니다.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자면 주인공 ‘나’가
여타 가족 구성원들과 ‘거리를 이격’함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있으니, 그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서술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죠.
바로 이 점이, 앞서 언급한 둘째 고모의 말과 ‘충돌’합니다. 그게 제가 느낀 아리송함의 정체였습니다.
4. 간단히 말하자면, ‘이방인의 시선’으로 구축된 작품이
그 끝맺음을 ‘가족 구성원 내부의 목소리’로 처리한 결과,
양자 간에 이질성 또는 어울리지 않는 어긋남이 발생하였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한다고 해놓고 장황하게 써놨습니다. 부족한 재주에 송구합니다.)
가령 이런 건 어떨까요? ‘우리 모두 공범’이라는 진술을 둘째 고모가 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 ‘나’가 내면 독백으로 “저들은 모두 공범인 셈이다. 저들 자신만 모를 뿐”이라고 읊조렸다면?
그리고나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는 문을 열어주어야 했다”라고 한다면?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상상일 따름입니다.
결말을 처리하는 방식은 온전히 작자의 영역이니, 저의 이 가정은
그저 제가 느낀 감상에 따른 연장선상의 생각일 뿐입니다.)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가족 구성원 내부의 모순’을 온전히 꿰뚫어보는 건 주인공 ‘나’ 뿐입니다.
‘가족 구성원 내부’에서는 정작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애써 외면한 채
저희들 내부에서 서로 악다구니를 벌일 뿐입니다.
그러다가 결말에 이르러 ‘가족 구성원 내부의 인물’인 둘째 고모가 ‘반성의 발언’을 하니,
팽팽하게 이어지던 작품 전개의 원동력이 뚜렷한 이유 없이 탁, 풀렸던 셈이죠.
단지 아비규환 같은 상황이 최고조에 치닫자 ‘스스로 반성’해버렸다기엔 계기가 약합니다.
숨겨진 진실이 (직접 언급되지만 않을 뿐) 밝혀져버린 시점에,
이 모든 모순을 지적할 발언권을 가진 존재는, 주인공 ‘나’ 뿐이었던 겁니다.
주인공 ‘나’의 입에서 “당신들 모두 공범”이라고 차갑게 한마디 툭, 뱉었다면
이 작품이 보여준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 그 매력이 더욱 선명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물론, 작중 주인공 ‘나’가 뚜렷한 발언을 하지 않는 존재이며,
무언가를 발언을 하기에는 ‘이방인’의 위치에 서 있는 게 너무 명확하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허나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상황이라면 ‘이방인의 질타’가 성립되어도 납득되는 포인트였을 겁니다.
또는, 직접적인 발화가 아니라 (이미 예시를 들었듯) 내면독백의 방식으로
시니컬한 진술을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테지요.
짧게 쓰려던 게 생각보다 주저리주저리 길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이 작품에 몰입했고,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인가봅니다.
흔히 ‘장르소설 쓴다’라고 하면 그것을 ‘펄프픽션 쓴다’라는 말과 동일하게 간주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듣지도 않은 채 백안시하는 태도를 종종 접합니다.
만약 그런 선입견을 가진 자에게 증거 작품으로 보여줄 글을 고르라면,
저는 이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봐라, 온라인의 장르물과 펄프 픽션이, 이걸 보고도 동의어로 보이냐?’ 라고요.
가족중심 전통사회의 붕괴를 꿰뚫는 날카로운 안목만으로도,
이것은 소위 ‘문단’이라 일컫는 집단이 추구한다는
‘순문학’ 작품들 사이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몇몇 ‘순문학’하시는 분들 글 보다 더욱 예리하고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감히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