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맨 먼저 장 주네의 <<도둑일기>>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라 사실 세세한 내용이나 줄거리 등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소설을 읽었을 때 받았던 내용적인 충격과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소외된 자의 고독과 슬픔 같은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아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소설중에 하나입니다.
<의뢰>가 그 소설과 비슷한 면이 얼마나 있는지는 당장 비교해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전 책장에서 <<도둑일기>> 책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고 읽은 지 너무 오래 돼서 내용도 거의 잊어버렸거든요. 근데 이 소설을 읽고 가장 먼저 그 소설이 떠올랐다는 건 뭔가 비슷한 게 있다는 이야기려니 생각할 뿐입니다.
도둑 출신 작가인 장 주네의 자전적 소설이니만큼 <<도둑 일기>>는 부랑자, 거지, 도둑, 남창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 녹아 있었고 그런 삶은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죠.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지만 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했던 그 힘, 또 그 밑바닥 삶에 공감하고 슬퍼하게 만들었던 그 힘. 그게 아마도 장 주네가 가지는 작가로서의 재능 때문이었겠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어두운 삶, 인간 사회의 치부, 부조리 등을 담은 리얼하고도 잔혹한 그런 이야기인데 읽고 나서 전 울었던 것 같아요. 그 남자의 삶에서 깊은 슬픔을 발견했었고 아직도 <<도둑일기>>를 떠올리면 슬픔이 먼저 고여 옵니다.
장 주네는 ‘가장 비천한 것들을 가장 고결한 자리에 올려놓은 진정한 자유인이자 악의 성자’로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고 ‘배반과 절도와 동성애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덕목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네요. (급히 포털 검색을 해봤어요.)
내용이 잘 기억나지도 않는 소설과 아그첵님의 소설 <의뢰>를 비교하는 건 잘못일 수도 있지만 제가 이 소설을 읽고 <<도둑일기>>를 떠올린 건 괜한 건 아니겠죠.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어둡고 소외된 곳의 이야기들임에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그 힘, 다 읽고 나면 고이는 슬픔 같은 게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 겁니다. -이 얘기가 하고 싶어서 <<도둑일기>>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어요. –
이 소설 속 주인공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동성애자이고 죽은 자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죽음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갑니다. 유품 정리 일(현재)을 하는 틈틈이 생각나는 추억들이 씨실 날실로 교직되면서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데요. 남자의 현재는 그 직업 특성상 밝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떠올리는 기억들도 하나 같이 어두운 것들뿐이네요. 가족들로부터 배척받았던 기억, 퀴어 가출팸에서의 생활, 성폭행 경험, 목격한 타인의 폭력성들, 동반자살 모임에서 있었던 경험 등. 충격적이고 어둡고 불쾌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 투성입니다. (저 개인적으론 이런 이야기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지는 않은 편입니다.)
가장 행복했을 순간을 추억하는데도 그 추억마저도 행복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이 남자에게 진정으로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퀴어로맨스’라는 작품 설명에 고개가 갸웃거려질 만큼 사랑이야기라기보단 깊고 어두운 심연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는 그런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어둡고 암울하며 슬프기도 한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귀신 나온다는 아파트에 혼자 와서 유품을 정리하는 대담함, 사람이 죽은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짜장면을 먹는다거나 죽은 자의 물건들을 거리낌 없이 팔 생각을 하거나 꺼림칙하다며 창고트럭 남자도 거부한 죽은 자의 침대를 옮겨와 거기서 잔다거나 하는 것 등은 추억속의 남자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들어요. 이제 나이를 먹어서 좀 단단해진 걸까요? 추억속의 남자는 핍박받거나 약취당하거나 거절당하고 울기도 하는 등 꽤 유약한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죠.
하지만 고독사한 의뢰인의 빈소를 홀로 지키는 남자가 흘리는 눈물 속에서 추억속의 남자와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불꽃이 되기를, ‘절망의 소실점’으로 타들어가기를 거부하지 않은 걸까요? 왜 끝내 그는 행복을 찾지 못한 걸까요?
개인적으로 내용적인 면에서는 충격을 받았고 그럼에도 이 작품의 분위기와 문체가 정말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과 간결하고도 담담한 묘사가 잘 어우러져 고독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부서진 정적의 조각들에 귀가 베인다’, ‘우리들이 놀라 다치지 않게 어르고 만져 순해진 악몽을 조금씩 꺼내어 보일 때’ 같은 문장을 만나면 숨을 헉, 내쉬게 되는 그런 놀라움을 선사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