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 얼마만큼의 스포일러를 담을까 하는건 늘 하는 고민이지만, 제목에 스포일러를 달아두는건 좀 실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나폴리탄에 대해 아시나요? 일본에서 만들어진 스파게티의 한 종류로 파스타면을 캐첩으로 버무린 거에요. 그러니까 이태리 타월 같은 것이죠. 나폴리와는 별 상관 없는 일본의 독자적인 요리에요. 그리고 어떤 괴담의 제목이기도 하죠.
일본에서 유래한 괴담으로 이와 비슷한 느낌의 괴담들 ‘바다거북 스프’, ‘빨간 당구공의 비밀’, ‘쿠네쿠네’, 등등… 이런 류의 괴담을 나폴리탄식 괴담이라 불러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꼽으라면 이제 이 작품을 댈 수 있겠내요.
그래서 나폴리탄식 괴담이 뭐냐고요?
생각해 봐요. 엄청 무서운 이야기에요. 역시 생각해 보니까 무섭죠?
이게 나폴리탄식 괴담입니다. 어떤 무대에서 주인공은 기괴한 체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인지 깨달으면서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끝나죠.
이 이야기에서 집회가 하는 역할이에요. 화자는 집회에 대해 깨닫습니다. 그러나 독자는요?
독자들은 작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미지의 공간에 던저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을 만날까요? 바로 본인의 상상력이죠. 그래서 집회가 뭐냐고요? 그걸 알면 그건 공포가 아니죠.
공포는 어디에서 기인하나요? 공포는 미지에서 옵니다. 주머니를 상상해 봐요. 거기에 손을 넣는 것을 상상해 봐요. 그게 두려운가요? 하지만 그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다고 하면, 그때도 당당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이런걸 상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어요. 그 사람은 비명을 지릅니다. 그리고 주머니 입구를 벌리더니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납득한 표정으로 변해요. 그는 끈을 조여서 주머니 입구를 막고 단단하게 봉인합니다. 그리고 선언해요. 이 안에는 정말로 무서운 것이 들어있고, 그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끔찍하니 자신은 말하지 않겠다고.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뭐야 시시해 라고 할 것이고, 그 어떤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끔찍한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이야기에서 무서움을 느끼겠죠. 작가는 메타포와 암시를 통해 여러분이 착즙할 여지를 던저줄 뿐입니다. 더 끔찍한 걸 떠올리세요. 더 잔혹한 것을, 더 더 더. 독자 여러분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제 작가를 뛰어넘어서 작가의 실수와 버릇까지도 의도라 생각하고 해석하면서 더욱더 지독한 공포와 으스스함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비로서 이야기가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