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를 쓰기에 앞서, 글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주인공인 민우는 과일 장수 아주머니께 집회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집회에 나오라는 권유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민우’는 집회에 나왔던 사람이며, ‘요즘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회에 나오지 않는 ‘민우’는 과일을 살 때도 차별을 받고, 동네사람들로부터 노골적인 적의를 한몸에 받습니다.
여기서 집회는 개인이 자유로울 수 없는 집단주의를 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로 묶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적의,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신자’ 낙인까지요. 혹은 정말로 집회를 뜻할 수도 있죠. 민우는 심지어 ‘집회’가 있던 시간에 집에 있었다는 이유로 살인 용의자로 몰리기까지 합니다. 경찰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망자가 실종된 지는 일주일 전, 민우가 집회에 나오지 않은 것도 그 무렵이라고 하니 민우는 그 전까진 집회에 나왔을 수 있겠네요.
그러나 민우는 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말합니다. 역시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교도소에서조차 사람들은 집회에 간다는 사실이 언급됩니다. 이처럼 교도소도 민우가 있던 바깥처럼 ‘집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민우는 집회를 갈 수가 없습니다. 집회를 찾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는 그는 꿈에서 마수이를 봅니다. 집단에서 배제된 공포와 집단의 광기가 마수이를 통해서 그려지는 것일까요. 집회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민우의 물음과 마수이의 소름끼치는 웃음, 집단적으로 쳐다보는 교도소 내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가 되며 글은 끝납니다.
마수이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다만 집회에서 숭배하는 초월적 존재쯤으로 인식되고요. 이러한 미스테리한 분위기는 마치 영화 <불신지옥>을 떠오르게 합니다. ‘요즘 왜 집회에 나오지 않냐’는 말은 집단이 개인에게 주는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민우는 나가겠다고 말하지 않죠. 비이성적인 광기가 지배하고 있는 동네에서 민우만 깨어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수이가 민우가 살해했다는 김민주라면, ‘요즘 왜 집회에 나오지 않냐’는 말이 민우에게 김민주가 물은 말이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어떤 것도 확정할 수는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