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희생양의 인생에서 행복을 앗아가는가 비평

대상작품: 선물 (작가: 요나렉,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2월, 조회 59

작가님께,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중단편 작품들이 많으신 거 같은데, 이들을 연재로 묶으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생양으로서의 기사라는 설정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공통된 화두와, 특유의 암울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개조인간이라는 설정은 워해머의 스페이스 마린과도 닮아 있지만, 풍겨오는 느낌은 전혀 다릅니다. 이 부분에 매료된 독자들이 혹시나 ‘선물’만 읽고 ‘우리들의 오카리나’ 등 다른 작품들은 지나쳐 버릴 수도 있기에 (물론 저 같은 진성 독자는 아예 구독을 걸어두고 다 보겠지만) 지금이라도 하나의 연재로 묶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을 감히 드려 봅니다.

 

이 작품은 제 0 기사인 최강의 기사 ‘욘’에 대한 중편 소설입니다 (분량이 단편이라기엔 꽤 길어, 일반적인 단편작품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그 호흡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난 후 평범한 사람이 되어, 특이한 귀를 가진 남자 토메오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왼팔에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는 후유증에 괴로워하면서도, 두 사람은 전쟁을 함께 겪었던 동료들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식사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만사에 허락을 구하려 하는 등 일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욘의 모습은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신체적으로 ‘갈아엎어진’ 상태여서 온 몸에 상처자국이 있는데다가 아기를 갖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묘사됩니다.

중간중간 회상 장면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진실에 대한 반전들도 흥미로운데요. 최종 보스 포지션인 ‘키’는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핵을 쏘고 사람을 더 많이 죽인 쪽은 기사를 만들어낸 종교 연합 측이었습니다. 어쨌든 욘도 참여했던 최후의 전투에서 키는 죽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제압되었는지 동료들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무튼 일상에 점차 적응하기 시작한 욘은 결국 남편 토메오의 꿈인 아기도 기적처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투에서 죽기 직전에 처한 기사에게 안락사 차원에서 제공하는 환상으로, 그녀를 기사로 만든 미노 박사의 선물이었습니다. 아씨발꿈 행복한 환영을 경험하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다시 현실에서 깨어납니다. 키는 아직 살아서 지구를 파멸시킬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고, 동료들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폐와 가슴을 잃고 내장을 흘리는 처참한 모습으로 온 힘을 다해 키를 향해 다가갑니다. 그리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월광검을 휘둘러 그를 쓰러뜨립니다.

사실 이런 류의 반전 자체는 고전소설 구운몽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오래된 클리셰지만,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이 잘 되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사’에 대한 설정과 잘 어울려 섞여 있었기 때문인지 그다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욘에 대한 안타까움이 극대화되는, 여운이 남는 결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팔에 자꾸 통증을 느끼고, 전쟁이 끝났는데도 텔레비젼에는 기사의 제작에 대한 영상물이 나오는 등 복선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하게 깔려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 자체를 희생하였음에도 그녀에게 돌아오는 선물은 고작 행복한 꿈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어 온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는 욘의 모습은 감명 깊습니다. 잘 만들어진 소년 만화 분위기도 물씬 나구요.

작품을 읽고 여운이 남는 건 결국 질문 때문입니다. 이 불쌍한 기사의 인생에서 행복을 앗아간 건 과연 누구일까요. 미노 박사일까요? 분명 욘을 기사로 만든 건 그녀이지만 (그녀가 욘의 아버지 곤의 부탁을 무시하고 욘을 기사로 만들겠다고 고집부리는 대화가 나옵니다), 이번 작품을 보면 그녀에게도 뭔가 다른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 키 일까요? 하지만 그는 끝까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묘사됩니다 (상상 속 이야기일수도 있지만요). 종교 연합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것도 상상 속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욘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암살하려 했으니까요. 여기서 더 나아가 보면, 어쩌면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삶을 지킨 모든 인류가 다 악역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욘은 그 악역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을 희생한, 정말 순진하고 불쌍하고 바보같은 캐릭터가 되겠네요.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물론 의도된 것일 수도 있지만, 자궁이 손상되었다는 욘이 아이를 임신하고 10개월동안 품고 있었다는 설정에서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는 부분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복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그저 ‘기적’으로만 이루어지는 전개는 다소 맥이 빠집니다. 현실에서 많은 불임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비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극대화 하기 위해, 욘의 난자에서 난자를 얻어낸 후 인공수정과 인공자궁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세계관은 아닐 것 같습니다) 통해 아기를 갖는 식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보다 현실적인 전개이면서 마지막 반전의 충격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감히 드려 봅니다.

(사실 제 글이야말로 더 갈 길이 먼데 이렇게 참견쟁이가 되고 있네요. 아무튼 좋은 작품 잘 읽었구요,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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