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감상

대상작품: 오거 (OGRE)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임시제, 18년 11월, 조회 101

*리뷰 곳곳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이시우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한다. 호러는 물론 추리/스릴러, 판타지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높은 퀄리티의 작품들을 쓰시는 분이 바로 이시우 작가님이다. 그런 이시우 작가님이 쓰신 단편들 중에는 SF 장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이 ‘오우거(ORGE)’라는 작품이다. 작품 자체가 1인칭 시점이다 보니,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작가님의 센스가 느껴져서 좋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오우거는 냉장고 조작에서 비행기의 자동 항법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을 관장하는 범용 AI다. 주인공은 그런 오우거의 API를 접목시킨 자동차 시연에 나선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끝날 줄 알았던 시연은 자동차 사고로 망하고, 주인공은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후 병원에서 과거 대학원에서부터 악연이기도 한 오우거의 개발자와 재회하게 된다. 사실 둘은 과거 대학원에서 인공지능 시뮬레이션 게임을 했었는데, 그 게임의 제목이 오우거였다. 게임은 오우거라는 슈퍼 전차와 8대의 일반 전차가 싸우는 방식으로, 당시 천재였던 개발자가 맡은 오우거를 유일하게 막았던 게 주인공이었다. 문제는 이후 개발자가 이기기 위해 주인공의 아이디를 상수로 넣어서,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의 전차부터 없애는 전술을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자는 그때 만들었던 것을 지금의 오우거의 학습 예시 탬플릿으로 쓴 것이다.

즉 주인공이 자동차 사고가 나고, 전신 마취를 받다 죽을 뻔한 것도 다 이전 오우거의 것을 재활용해서다. 지금의 범용 AI 오우거는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살인 병기가 되고 만 것이다.

 

작중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억울함을 보면 분해하는 게 맞는데, 이상하게도 보는 내내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분명 감정 이입이 되고 공감해야 되는데, 작가님의 개그 센스가 곳곳에 드러나면서 무겁지 않게 잘 읽힌다. 개인적으로 작중에서 오우거의 행동을 표현하는 문구 중 ‘[당신의 다급한 요청은 알겠지만 일단 저새끼 먼저 죽이고 보고요!] 예압!’ 이 가장 웃겼다.

주인공이라는 캐릭터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특유의 가벼움을 버리지 않는다. 분명 인공지능의 인간 살해를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결코 무겁지 않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SF에 선뜻 손을 대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좋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천재 개발자의 행동이 의심스럽기는 하다. 자신이 제대로 검수를 안 해 벌어진 일인데, 주인공 하나 때문에 전 세계에 쓰이는 오우거를 정지시킬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주인공의 죽음이다. 분명 뭔가 하나만 잘못돼도 죽을 목숨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한명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꼴은 천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로 세상을 위해서인건지 의문이다.

소설 마지막, 주인공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비행기들을 보며 생각한다. 자신이 죽고 나면 오우거는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지. 리뷰를 쓰고 있는 나도 궁금하다. 과연 오우거는 후련해했을까? 아니면 죽음이란 걸 모른 채 주인공의 시체 위에 계속 공격을 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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