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짜증 나는 날이다.
오늘 시연의 주인공인 오우거가 온도와 습도 센서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나의 행동 패턴 분석통계를 조합하여 조작하는 에어컨은 밤새 동작을 멈추어 나를 땀 범벅으로 만들었다. 역시나 또 오우거가 냉동식품 포장지의 RFID 정보 기반으로 칸마다 각각 최적 온도를 설정한다는 냉장고는 냉동실 온도를 밤새 섭씨 16도로 맞추어 놓아 얼마 전에 쟁여둔 즉석식품들을 모조리 내다 버려야만 했다.
에어컨과 냉장고의 센서 문제였을 거다. 물론 동시에 서로 다른 가전제품의 센서가 맛이 가는 건 희귀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미 수년간 인류 대다수에게 검증되어 냉장고 조작에서 비행기의 자동 항법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을 관장하는 범용 AI ‘오우거’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리는 없지 않은가?
냉동식품이야 새로 사면 되고 땀 범벅의 몸은 샤워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온종일 나를 괴롭히고 있는 기자들을 해결할 방법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자율 주행 자동차가 일반화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요. 오늘 레이싱 형태의 시연에서 선보이는 ‘AI 주도 운전’이 종래의 자율 주행과 다른 게 뭔가요?”
오늘만 벌써 5번째 똑같은 질문이다. 이건 이미 보도자료에 자세히 설명된 내용이다.
나눠준 보도자료를 비효율적인 부채 대용의 종이 뭉치로 활용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나는 입 끝에 걸린 욕설을 간신히 억누르며 가식적인 미소를 띠고 이미 4번이나 말한 대답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종래의 자율주행은 센서에서 읽어 들인 수치 데이터, 이를테면 앞차와의 거리라든가 차선 사이를 위협적으로 끼어드는 배달 오토바이의 유무, 차량 주변의 교통량 등의 정보를 기반으로 사전에 정의된 변수 테이블의 값을 참조해서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의 개도량과 스티어링 모터의 회전 각도를 결정해주는 방식이었지요. 오늘 시연하려 하는 AI 주도 운전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범용 AI ‘오우거’의 API를 활용해서 ‘오우거’ 스스로 도로의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여 자동차를 주도적으로 조작하는 방식입니다.”
기자는 막 UFO에 납치당해 외계인에게 가늠할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듣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러니깐 지금 기자님 집 냉장고나 에어컨,TV 등을 관리 하는 범용 AI ‘오우거’ 에게 우리 회사 자동차를 맡기고 눈과 손을 줘서 대신 운전하고 경쟁하게 하는 시연이라는 겁니다..”
기자는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이제 자동차도 인터넷에 연결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아니.. 내 대답을 어디로 들었기에 그딴 식으로 해석한단 말인가? 가 막 추가적인 설명을 하려 할 때 박 이사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항상 업계를 주도해 나가는 우리 회사가 사물 인터넷과 AI를 자동차에 접목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요? 기자님에게도 익숙한 OTA 개념이 좀더 확장되었다고 생각하시면 금방 이해 되실겁니다. 하하.”
저건 또 무슨 해괴한 해석이란 말인가? 더 해괴한 것은 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블릿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기자의 모습이었다.
아마 ‘업계 선두 니콜라 게 섰거라!’ 같은 웃기는 헤드라인 뽑으려는 거겠지….
“그럼 오늘 시연은 자동차 버전의 알파고 같은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보도자료는 읽지 않을 수 있다 쳐도 프리젠테이션 때 이미 설명한 걸 왜 또 물어본단 말인가? 굳이 알파고를 언급하고 싶으면 레이싱을 위해 즉석에서 태어난 알파고 들 간의 자동차 경주 시연이라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오우거’는 알파고처럼 바둑에만 특화된 약 인공 지능이 아니라 공기 청정기 제어부터 맞춤형 광고 추천, 의료 영상 진단, 항공기 운항 등등 사회 전 분야에 두루 쓰이는 중앙 집중적인 범용 강 인공지능이다.
오늘 시연에 쓰이는 8대의 자동차들 모두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오우거’의 제어를 받는다. ‘오우거’는 자동차에서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8대의 자동차를 동시에 운전하며 레이싱을 펼친다.
손이 16개 달린 사람이 8인용 게임을 혼자서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물론 인터넷 기반의 범용 인공 지능 API인 ‘오우거’ 혼자서 이 모든 서커스를 다 해내는 건 아니다.
8대의 자동차에는 각각 ‘오우거’의 자식 같은 인공 지능이 탑재된다. 이 자식 인공 지능은 현재 자동차의 정보를 바탕으로 별다르게 복잡한 판단이 필요 없는 수준의 운전을 담당한다. 근육이 동작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물컵이 떨어지는 걸 보면 시간정보가 도달한 뇌에서 ‘아 물컵이 떨어지는구나! 저걸 잡아야겠다!’란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우리의 손은 물컵을 향해 뻗어나가지 않는가? 자식 인공 지능은 이런 조건 반사적인 근육 조작을 관장하는 놈들이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복잡한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이 자식 인공 지능들은 인터넷을 통해 ‘오우거’의 통제를 받는다. 이를테면 ‘프랑스산 고급 물컵과 2000원 샵에서 산 싸구려 물컵이 동시에 떨어지면 무엇부터 받아 내야 할까?’ 라든가 레이싱 중 좁은 코너에서 베스트 라인을 다른 경쟁 차가 가로막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추월할 수 있을까? 같은 복잡하고 가치 판단이 필요한 상황 말이다.
그럼 이 이런 자식 인공 지능들은 누가 만들었냐고? ‘나’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도 ‘오우거’의 작품이다. ‘오우거’의 진짜 멋진 부분이 여기에 있다. 우리 회사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답게 ‘오우거’의 눈과 귀와 피부 같은 감각기관에 해당하는 정보만을 수집해서 제공한다.
상공에 띄운 드론 카메라가 제공하는 트랙 전반의 영상, 자동차의 현재 상태를 제공해주는 OBD와 GPS 정보, 주변 도로 상황을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와 라이더의 측정 정보 등이 될 거다.
‘오우거’는 주어진 정보와 레이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레이싱에 필요한 모든 판단 로직을 학습(당신들이 위키 검색해서 긁어모은 이해도 못 할 바이트 쪼가리 외워서 남들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 없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된다.)하여 즉석에서 분신 인공 지능을 만들어 자동차에 탑재시키고 레이싱 도중에 보완이 필요하면 바로바로 개정하기도 한다.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물론 ‘오우거’는 나의, 아니 우리 회사의 작품은 아니다.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회사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라고.
이름만 대면 당신들도 알만한 인터넷 플랫폼 인프라를 개발하는 3개의 회사, 각각 A,G,M이라고만 하겠다, 가 소모적인 AI 개발 경쟁을 멈추고 5년간 합작하여 만든 세계 최초의 범용 인공 지능 또는 강 인공 지능이 ‘오우거’ 이다.
우리 회사로서야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데 적극적인 제조업 회사의 이미지를 과시하기에 좋고, AGM 연합체로서는 이미 항공기와 선박 운항부터 인공위성의 관제 같은 비교적 쉬운 영역을 담당하던 ‘오우거’가 복잡한 교통 통제와 연계된 자율 주행까지 능숙하게 해치우는 모습을 레이싱이라는 극적인 형태로 대중에게 보여 줄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이 정도면 기자에게도 완벽한 설명이 될 것이다.
내가 막 나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나의 지식의 편린을 들추어 광휘를 비추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찰나에 박 이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기자님 이해력이 빠르시네요! 이제 알파고가 바둑뿐만이 아니라 직접 차를 몰면서 레이싱까지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족한 모습의 기자가 떠나가자 박 이사가 내 손을 잡고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야야.. 너는 좀 사람들이 알아듣게 말하라고 몇 번을 내가 이야기했는데!”
“아니 애당초 연구실에 틀어박혀 컴퓨터 끼고 사는 나 같은 프로그래머를 왜 끌고 나와 사람 상대하라고 하는 건데요? 홍보팀 애들한테 맡기거나 그 말 잘하는 멋진 언니들한테 교육자료 나눠줘서 해달라 하면 될걸. 뭐 그 돈 아껴 뭐 하시게요? ”
“아! 새끼 진짜 말 이쁘게 하네. 야 이거 홍보팀 애들이나 외주 애들 교육해봐야 개들은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어! 나도 반이나 이해할까 싶구먼… 니가 그래도 개발팀에서는 제일 입도 잘 털고 사람들 앞에서 안 쫄고 뻔뻔하게 잘난 척도 잘하잖아! 좀 성질 죽이고 잘 좀 해봐. 시연 끝나면 니 팀장 찔러서 내가 장기 휴가 보내준다니깐?”
“건 그렇다 쳐도. 도대체 실제 트랙 시연은 내가 왜 해야 하는 건데요? 회사에 테스트 드라이버도 많잖아요? 도대체 프로그래머한테 그런 걸 왜 시키는데요??”
“야 테스트 드라이버가 개발자야? 시연하다 사고 터지면 대응할만한 게 너밖에 더 있냐? 누가 너보고 차 몰래? 차 안에서 헤드 유닛에 개발툴 연결해 놓고 모니터링만 하라는 거잖아!”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래…
어쩌면 날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트랙의 노면과 최상의 접지력을 내기에는 오늘같이 덥고 짜증 나는 날씨가 최적이라곤 해도 하필이면 노면 온도가 38도에 육박하는 날을 고를 줄 이야…
“아 알았어요. 왜 성질을 내고 그래요.”
“성질은 니가 먼저 냈잖아! 진짜 이사 짬에 너 같은 꼴통 비위 맞추고 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어? ”
“네네.. 알겠습니다. 얌전히 차에 타서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을게요. 뭐 별일 생겨봐야 회사 주가 떨어지는 정도겠지… ”
박 이사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기자들 무리를 향해 떠나갔다.
내가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박 이사는 기자들 상대는 자신이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로서야 멍청한 질문들만 앵무새처럼 반복해대는 기자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으면 그저 감사할 일이다.
마지막 점검을 빌미로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노트북 화면의 정보만을 건성으로 훑어보다 보니 어느덧 시연 시간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레이싱용 헬멧을 쓰고 방염복에 방염 장갑까지 착용하니 오리털 파카를 몇 겹이나 껴입고 사우나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5 바퀴.. 10분만 참자!’
사전 주행에서 ‘오우거’는 회사 소속 테스트 드라이버의 베스트 랩을 1초나 단축했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최초의 1바퀴를 제외하곤 1분 52초면 트랙을 1바퀴 도니 시연이 끝나는 데는 10분이 체 안 걸린다는 소리다. 문제는 내가 모니터링 하기 위해 탑승하는 차량과 무인 차량 간의 조건을 동등하게 한다고 에어컨을 모두 꺼 버린 것이다.
무인 차량도 에어컨을 켜고 조수석에 나와 같은 무게의 더미를 실으면 같은 조건인 게 아니냐? 고 항변해 보았지만 구간 기록이 느리게 나올 게 윗분들은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이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이글대는 차 안의 살인적인 열기를 방염복까지 껴입고 감당하는 건 그 양반들이 아니니 속 편한 소리를 해댈 수 있는 거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아니 레이싱 전반이 순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말이 좋아 레이싱이지 같은 자아에 의해 조종되는 개체 간에 경쟁이라는 건 애당초 성립이 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순조롭지 않은 건 살인적인 더위와 급격한 가감속에 시달리는 내 몸이었다.
특히 21번 코너가 문제였다.
크게 왼쪽으로 꺾어진 20번 코너를 1G에 달하는 횡 가속을 받으며 빠져나와 짧은 순간에 200Km가 넘게 가속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꺾인 낙차 큰 내리막 코너에서 60Km 까지 순간적으로 감속하는 순간마다 구토가 쏠리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처음 2바퀴 정도는 견딜 만했지만 3바퀴째가 되자 시연이고 회사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차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계에 달한 정신을 추스르며 3바퀴째의 19번 코너에 접어드는 순간 핸드폰의 메시지 수신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씨.. 이거 꺼 놓는 다는걸 깜빡 했네..’
다시 생각해 보니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차 안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건 아무도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것 아닌가?
문자는 박 이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2 Laps 2 go! 장기 휴가! 좀만 참아라!]
평소의 박 이사와 어울리지도 않는 격려를 보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직속 결재권자로부터 장기 휴가 소리를 들으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탄 시연차는 막 선두로 20번 코너를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21번 코너에 접어드는 순간 급격한 종횡 감속에 대비하며 몸을 긴장시키고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런데 무언가 잘못되었다? 왜 속도를 줄이지 않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오른쪽으로 핸들이 돌아가야 할 시점이 한참 지났는데도 내가 탄 차는 여전히 가속하며 직진 중이다.
“브레이크!!”
너무 당황해 드는 사람도 없는데 발작적인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내 비명을 오우거에게 들려줄 귀의 역할을 할 센서는 이 시연 차에 달려 있지 않다. 설령 내 비명을 오우거가 들었다 해도 그걸 레이싱에 영향을 줄 만한 가치 있는 정보라 판단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끊임없이 가속해 가는 내 눈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차단벽을 차마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오우거’가 감속 없이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20번 코너의 차단벽에 차를 처박는 순간 조수석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내 얼굴과 가슴과 몸통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갈비뼈가 최소 네 대는 나간 것 같다. 무게 더 줄여보겠다고 에어백을 빼버리지 않은 게 그나마 내겐 다행인 일이다. 몽롱한 와중에도 시연차의 시동이 꺼지지 않고 계속 엔진이 회전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킬 스위치가 작동해야 할 텐데… 사고 나면… 오우거가 모든 시연차 시동 바로 끄고…”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은 2톤에 육박하는 또 다른 강철 덩어리가 200Km가 넘는 속도로 내가 탄 시연 차를 들이받는 순간 입안으로 사그라지었다. 등 뒤를 육중한 해머로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연달아 밀려왔다.
나는 의식이 멀어지는 와중에도 똑같은 충격이 7번이나 반복되는 걸 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