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 동화경제사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가 『 동화경제사 』를 저술하게 된 것은 부모가 되고 나서 어린 아들과 동화 함께 읽기를 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첫 번째 동화 읽기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행복한 세계로 인도해주었다면, 어른이 되어 텍스트 뒤에 숨겨진 컨텍스트를 찾아낸 두 번째 동화 읽기는 동화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중요한 기록이자 증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음을 저자는 고백하고 있다. 동화경제사란 책의 이름이 대변하듯 저자가 두 번째 동화읽기를 통해 주목한 것은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동화 탄생의 역사적 기원이 된 자본주의의 민낯을 밝히고 있었다.
『 동화경제사 』에서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서 가난, 장시간 노동 등 산업혁명 속 어두운 시대상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달콤한 초콜릿 속에 숨겨진 착취와 불공정 거래관행을,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에게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 앞에 저물어가는 수공업과 새롭게 자리잡은 산업화시대의 노동질서를 재조명하고 있다. 동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를 침범 당하는 것 같아 약간의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했던 이유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분석하고, 꿀벌 마야의 모험에 표현된 개인의 합리적 행동과 공익의 놀라운 조화를 아담 스미스 보다 60년 앞서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고 해석해낸 것, 빨간머리 앤이 타는 자전거에서 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을 읽어내는 등 동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비밀스런 장치들을 색다른 시각을 통해 발견해내는 재미가 정말 새로웠다.
『 펄펄 끓는 전래동화 』를 읽으며 기대했던 것도 바로 그런 부분들이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전래동화를 새로운 시각과 화자로 풀어낸다거나,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입각하여 이야기의 생성배경을 탐구한다거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철학적 코드를 발견해내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작품을 읽고나서는 작품에 기대했던 것만큼의 만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과 ‘별주부전’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을 통해 예상치 못했던 부분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아닌 작가가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라고 생각한다. ‘선녀와 나무꾼’과 ‘별주부전’에 이어서 휴지기 이후 나올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기대한다.